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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나훈아는 테스형 하는데, 넌 뭐하냐는 말에 앨범 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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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53년차 가수 조영남이 15일 ‘50주년 기념’ 앨범을 낸다. 사진 위쪽 그림이자 타이틀곡 제목인 ‘삼팔광땡’은 화투게임 ‘섰다’에서 가장 좋은 패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3년차 가수 조영남이 15일 ‘50주년 기념’ 앨범을 낸다. 사진 위쪽 그림이자 타이틀곡 제목인 ‘삼팔광땡’은 화투게임 ‘섰다’에서 가장 좋은 패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수 조영남(75)이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을 15일 낸다. 1968년 ‘딜라일라’로 데뷔해 실제론 데뷔 53주년이지만, 그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오히려 “‘50주년’ 하면 늙어 보여 난 빼고 싶었다”고 했다.

타이틀곡 ‘삼팔광땡’은 화투 게임 ‘섰다’에서 가장 좋은 패 이름. 조영남은 “내 인생은 늘 ‘삼팔광땡’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작곡한 정기수와 작곡가 한빈이 공동 작사·작곡한 곡이다. 조영남은 “조용필이 ‘바운스’, 나훈아는 ‘테스형’을 하는데 넌 뭐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부끄러워져서 만들었다”고 했다. 작곡가 정기수를 만난 후 트로트 풍의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트로트에서 ‘화개장터’ 만큼 빵 터지는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앨범 발매 후 전국 투어 콘서트도 계획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는 2012년 낸 ‘모란동백’을 꼽았다. 이제하 시인이 1998년 작사, 작곡한 곡을 2012년 리메이크했다. "내 장례식장엔 ‘딜라일라’ ‘화개장터’ 말고 ‘모란동백’을 틀라고 할 거다. ‘나 어느 변방에’라는 가사가 아웃사이더인 내 입장을 잘 말해주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

가수 생활을 돌아보며 "할 만큼 한 것 같다. 앞으로도 소리 날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는 그는 "내가 한량없이 주책을 부리는데도 많은 팬들이 너그럽게 봐준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번 앨범 표지는 클림트의 ‘포옹’을 토대로 화투를 덧입힌 그의 작품이다. 조영남은 "‘키스’가 세계적으로 더 알려져있지만 난 ‘포옹’이 더 좋더라”며 "클림트가 금색으로 화려함을 표현했는데, 나는 화투로 화려함을 표현했다”고 했다.

‘그림 대작 사건’으로 지난해까지 5년가량 방송에 얼굴을 거의 비추지 못했지만, 그는 지금도 그림을 계속 그린다. 2016년 조영남이 사기죄로 기소된 ‘그림 대작 사건’은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2심 무죄, 2020년 3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추가로 기소된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지난 5월 무죄 판단이 나왔다. 조영남은 "죽어지내면서(그는 지난 5년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50년 동안 국가로부터 대우를 충분히 받았으니, 이 정도 유배 생활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유배 간 사람들이 일 열심히 하고 책도 썼던 것처럼, 그림 열심히 그리고 책도 두 권 썼다”고 했다.

‘대작 사건’ 이후에도 바탕 그림은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다만 그는 "이제 직접 하지 않고 갤러리를 통해서 한다”고 했다. 작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색이 변하지 않는 잉크로 인쇄해둔 종이 화투를 잘라 구성해 붙인 원화를 보낸 뒤, 그 원화를 물감으로 그려낸 ‘바탕그림’을 받는다. ‘직접 그리면 간단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해외 현대미술, 팝아트 작가들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답했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그리는 그림은 화투 그림과는 색이 다른, 부드러운 풍의 그림들이다. 최근에는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직접 그린 그림만으로 작게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림 20여점을 환불해주고, 소송 비용을 대느라 대출을 처음 받아봤다는 조영남은 "국가가 나를 가수로 키워줬듯, 나라가 나를 화가로 키워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경쾌하게 말했다. "그 사건 전엔 10명 중 한두명만 ‘조영남이 그림 그린다’는 걸 알았는데, 이제는 절반 이상은 아는 것 같다”면서다.

과거 명성에 비해 최근 조영남에 대한 대중 호감도는 낮은 편이다. 그는 "가수로 성공했는데 왜 미술에 들어가서 시끄럽게 구냐, 하는 시선이 가장 큰 것 같고, 자식과 부인을 버리고 바람피워 집을 나간 게 이유인 것 같다”고 했다. 바꿔볼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솔직하게 말하는 걸 자제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루 7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림, 음악, 글쓰기로 하루를 꽉 채워 보내지만 생활력은 ‘0’이다. 평생 살면서 전자레인지를 최근에야 처음 사용해봤을 정도다. 컴퓨터를 쓰지 못해 책이나 연재 원고도 모두 원고용지에 빨간색 펜으로 쓴다.

나이 탓에 걸음도 느려지고 붓을 든 손도 느릿느릿, 노래할 때 숨도 조금 짧아졌지만 말은 여전히 빠르고 거침없었다. 불편한 질문에도 화를 내거나 답을 피하지 않았다. 2009년 일찍이 ‘장례 퍼포먼스’를 하고, 최근 한 방송에서 10년째 뇌출혈 예방약을 복용 중이라고 밝힌 조영남은 "죽음을 얘기해야 순간순간 살아있는 걸 더 알 수 있다”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했다.

조영남은 미리 써놓은 유서에 ‘내가 죽으면 벽지에 가서 태운 뒤 영동대교 한가운데서 (몰래) 뿌려달라’고 썼다고 했다. 그는 "10년 넘게 영동대교를 보고 살아서 그렇게 썼는데, 그게 불법이라길래 가운데에 ‘(몰래)’를 넣었다”고 태연하게 덧붙였다. 만약에 묘비를 만든다면 그가 생각해둔 묘비명은 ‘웃다 죽다’ 딱 네 글자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잘 죽냐가 문제지 더이상 뭘 하겠냐”며 "내가 나가다 뇌출혈로 쓰러질 수도 있고, 앞으로의 시간이 보장돼있지 않으니 지금 사는 것처럼 즐겁게 쭉 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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