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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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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악수는 중세 기사들이 무기가 없다는 표시로 오른손을 내밀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왼손을 내밀면 결투를 신청한다는 뜻이다. 오른손은 무기를 드는 손이기 때문이다.

악수 방식은 마음을 보여 준다. 마음만 담으면 왕에게 발로 악수하고도 칭찬을 들을 수 있다. 19세기 벨기에의 화가 샤를 페루는 팔이 없어 발로 그림을 그렸다. 국왕 레오폴드 2세는 그의 발을 잡고 "가장 마음 편하고 유쾌한 악수"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대통령과 악수할 때 엎어지는 걸까. 요즘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군사정부 시절 사진을 보면 90도로 납작 엎드린다. 모두 아부꾼이었을까. 아니다. 의전팀의 조작이다. 청와대 카펫에 표시해 놓은 악수 위치는 너무 멀다. 엎어질 정도로 숙이지 않으면 대통령의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정치인에게 악수는 유권자에게 마음을 전하는 통로다. 악수를 얼마나 했느냐가 많이 당락을 가른다고 믿는다. 선거 때는 악수로 퉁퉁 부은 손을 치료받는 걸 각오해야 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처럼 무기가 없다는 표시인 악수를 하다 테러당할 위험도 있다. 미국 정치인은 그것도 어렵게 됐다. 연간 4만 명의 사망자를 내는 독감 때문이다. 손바닥이 독감 바이러스의 주 전염원이라고 한다. 딕 체니 부통령은 악수하려고 줄 선 유권자들에게 손을 닦게 했고, 본인도 악수가 끝나면 손부터 씻었다.

미국의 리더십 연구가 로버트 브라운은 악수를 8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그 중 '상대방을 잡아당기는 악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상대의 기를 꺾기 위해 자주 이용했다. 박근혜 전 대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처럼 '다른 손을 상대방의 손등이나 어깨에 얹는 악수'는 다감한 성격을 드러낸다. 득표를 원하는 정치인의 연기일 수도 있다고 한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힘없는 손을 내미는 '죽은 물고기형'에 가깝다. 무관심의 표시라며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한다.

며칠 전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악수하다 "아-"하고 비명을 질렀다. 잦은 악수로 다친 손이 덜 나았기 때문이다. '꽉 쥐는 악수'는 '지배욕'을 나타낸다. 이 때문에 인터넷이 시끄럽다. 한쪽은 기싸움을 걸어 왔다고 분개한다. 다른 쪽은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의심한다. 사소한 일에도 '박빠' '명빠' 하고 싸우는 인터넷 지지자들이 나중에라도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어쩌면 예비후보들도 모두 미소로 포장하며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내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