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쉼] 수입 재개된 미국산 쇠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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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4명 중 3명은 미국산 쇠고기를 불안하게 여긴다. 조인스닷컴이 미디어다음.리서치앤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성인 남녀 700명)의 77.1%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안전하다'는 의견은 13.7%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광우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여론을 부정적으로 흐르게 한 주요인으로 보고 있다.

'광우병'이란 병명은 학계에선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BSE라고 한다. '소 해면상 뇌증'을 의미한다. 병명에 주증상이 드러나 있다. 소의 뇌가 마치 스펀지처럼 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BSE에 걸린 소는 잘 걷지 못하고 쓰러진다. 원인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인 육골분 사료를 먹인 탓이라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BSE에 걸린 소는 세계적으로 18만5000여 마리에 달한다. 이 중 18만여 마리가 영국 소다. 미국.캐나다.일본 등에서도 발생했지만 몇 마리 되지 않았다.

BSE 발생국에선 쇠고기를 들여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2003년 12월 미국에서 BSE가 발생하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계속해 자국 쇠고기 수입 재개를 요구해 왔고, 지난달 30일 9t 물량이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다. 한.미 양국이 협상을 통해 결정한 수입 조건은 '생후 30개월 미만 소의 뼈 없는 살코기'다. 이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허용 기준을 바탕한 것이다.

소의 연령을 '30개월 미만'으로 한정한 것은 6개월 된 어린 소에 BSE 병원체(프라이온)를 인공 감염시킨 영국 수의연구청(VLA)의 실험 결과 감염된 지 32개월 뒤 뇌에서 인간 광우병 병원체인 프라이온이 검출되고 35개월 뒤 BSE 증상이 나타난 것에 근거한 것이다(국립수의과학연구원 조인수 박사). 그러나 일부에선 '30개월 미만의 어린 소'도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생후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19건, 일본에서도 2건의 BSE 발생 사례가 보고돼 있기 때문이다.

'뼈 없는' 고기만 수입을 허용한 것은 과거에 한국인이 즐겨 먹었던 'LA 갈비'가 수입 대상에서 제외됐음을 뜻한다. '살코기'로만 제한한 것은 BSE 유발 가능성이 높은 특정 위험 부위(SRM)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건국대 수의학과 이중복 교수는 "소의 뇌.척수.신경절.눈.회장(곱창) 등이 SRM에 속한다"며 "이 부위들의 국내 유입은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소머리 국밥(소 골이 아니라 뺨쪽 고기로 만든다), 소 꼬리, 소 혀 등은 SRM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에선 살코기(소의 근육) 부위도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유전자 변형된 생쥐 10마리에게 BSE에 오염된 쇠고기를 제공한 결과 이 중 1마리가 BSE에 걸렸다"는 연구 결과를 내세우고 있다.

BSE에 걸린 소의 SRM을 사람이 섭취하면 인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 인간 광우병의 공식 병명은 vCJD. 주증상은 치매인데 나이와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것이 노인성 치매와 다른 점이다(한림대 의대 김용선 교수). 잠복기는 3.5~10년 이상이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50여 명(이 중 140여 명이 영국인)이 이 병에 걸렸다. 일본.홍콩 등 동양에서도 vCJD 환자가 발생했지만 이들은 영국에서 오래 거주했거나 장기간 여행한 전력이 있는 사람으로 확인됐다.

vCJD 병원체인 프라이온은 세균.바이러스 등 다른 병원체들보다 열에 훨씬 강하다. 2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해야 없앨 수 있다. 일반 가정의 조리 온도로는 제거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것이 BSE와 vCJD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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