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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불통이 초래한 윤석열-김종인 파열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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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하 경칭 생략) 영입 문제를 3주 넘게 끌었지만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공전의 배경을 놓고 양측 설명을 들어보면 ‘라쇼몽’의 완벽한 재연이다. 핵심 쟁점인 김병준 상임공동선대위원장 인선부터 그렇다. 윤 후보는 지난 22일 김종인·김병준 위원장과 3자 회동한 결과 김종인 총괄·김병준 상임위원장 체제로 선대위를 출범시킨다고 발표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 측 설명은 전혀 다르다. 윤 후보가 3자 회동에 앞서 선대위 인선안을 보여줬는데, 김종인 전 위원장은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이라 적힌 부분에서 ‘안 된다’는 뜻을 표했다고 한다. 그러자 윤 후보가 ‘김병준’에 펜으로 빨간 줄을 그었다는 것이다. 이를 본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 김병준을 선대위에서 뺄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윤 후보가 돌연 김병준 위원장과 함께 김종인 전 위원장을 찾아와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임명을 받아들여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불쾌해진 김종인은 침묵을 지켰는데, 회동 뒤 김종인 총괄·김병준 상임위원장 체제를 발표해 격분했고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합류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솔직한 대화 기피하다 불신 쌓여
이간질 세력 빼고 둘이 담판해야
쓰려면 권한 주고 못한다면 접길

윤 후보 측 얘기는 다르다. ‘빨간 줄’을 그었다는 대목부터 엇갈린다. 윤 후보가 김 전위원장의 말을 듣고 메모하는 과정이었는데 김 전 위원장이 오해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또 3자 회동에서 김병준 영입 필요성을 설명하는 윤 후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등, 승낙으로 여겨질 제스처를 보였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 된 지난주 수요일(11월 24일) 만찬에 대한 설명도 엇갈린다. 이 만찬은 두 사람의 부인들이 전화로 “남편들이 만나게 하자”고 뜻을 모으면서 물꼬가 트였다고 한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부인 김미경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는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며 두 사람 다 김종인의 선대위 합류에 긍정적인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 전화에서 두 부인은 ‘김종인은 조건 없이 선대위에 가고, 윤석열은 김종인의 체면을 세워준다’는 틀 아래 남편들의 식사 자리를 추진했다고 한다.

그래서 24일 만찬이 성사됐는데, 여기서도 둘은 소통 부재만 확인하고 빈손으로 헤어졌다. 윤 후보는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 자리는 그대로 두되 역할과 권한을 제한하는 방안으로 김종인 전 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주려 했는데, 김종인 전 위원장이 생각한 ‘체면’은 달랐다는 것이다. 김병준 위원장이 상임위원장을 맡는 것은 수용할 수 없으며, 대신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처럼 선대위와는 별도의 조직 위원장을 맡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일화들에서 드러났듯 두 사람은 소통 자체가 안 되고 있다. 이견이 있으면 솔직히 털어놓고 타협의 공약수를 쌓아나가는 협상의 ABC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위해 두 사람을 이간질하는 세력은 배제하고 단둘이 허심탄회하게 만나 담판을 벌이는 게 필요하다.

특히 윤 후보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하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발목 잡는 사람 없이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어야 자리를 맡는 스타일이다. 정말 그를 쓰고 싶다면, 원하는대로 일할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김종인은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민주당 좌장인 이해찬 전 총리와 핵심 친문인 정청래 의원의 낙천을 밀어붙였고, ‘셀프 공천’ 파동 때는 칩거로 맞서 결국 문재인 당시 대표가 구기동 자택을 찾아 복귀를 읍소하는 장면을 끌어냈다. 그에게 ‘독선적 리더십’이란 비난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하지만 민심을 읽는 통찰력과 중도확장력 덕분에 선거마다 승리해 ‘여의도 차르’란 별명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윤 후보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를 쓰겠다면 힘을 실어줘서 데려오고, 그러지 못하겠다면 ‘김종인 카드’를 접는 것이 맞다. ‘당신은 그냥 들어와 구색만 맞춰달라, 일은 우리가 다 하겠다’는 식으론 김 전 위원장의 마음을 돌이키기 어려워보인다는게 주변 (중도 개혁 성향 정치인)의 얘기다. 김 전 위원장의 영입을 놓고 좌고우면하며 오락가락하는 사이 윤 후보의 지지율은 폭락하고 이준석 대표마저 당무를 거부하는 등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채 허송세월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선대위의 향방을 좌우할 ‘김종인 문제’를 수습하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대선 후보로서의 지도력과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0선(選)’의 정치 신인, 정치 입문 몇개월만에 제1야당의 대선 후보를 꿰찬 윤 후보가 외로운 시험대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