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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브랜드 혁신의 시작은 패션”…정준호 대표의 5500억 승부수

중앙일보

입력

롯데는 2018년 6월 그룹의 패션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롯데지에프알(GFR)을 새롭게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경쟁 패션기업인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오랜 기간 해외사업을 담당해 온 정준호 대표를 수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몽클레르·마틴마르지엘라·어그 등 36개 브랜드를 한국에 성공적으로 소개한 패션 경영 전문가로, 지난 3년 간 ‘새판 짜기’에 고심해 왔다.

가장 먼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기존 브랜드를 정리하고 겐조·빔바이롤라·나이스크랍만 남겼다. 올 초 영국 뷰티 브랜드 ‘샬롯틸버리’를 시작으로 새로운 브랜드 포트폴리오 구축에 공을 들여온 그는 이번엔 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 ‘카파’와 프랑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까웨’로 승부수를 띄웠다.
정 대표는 “앞으로의 시장 대응 키워드는 애슬레저(A), 뷰티(B), 컨템포러리(C)”라며 “롯데가 경쟁사보다 10년 늦었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브랜드 사업을 시작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9일 서울 청담동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롯데GFR 정준호 대표. 지난 9일 '카파''까웨' 재론칭 행사 후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사진 롯데GFR

롯데GFR 정준호 대표. 지난 9일 '카파''까웨' 재론칭 행사 후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사진 롯데GFR

명품이 아닌 활동적인 브랜드를 선택했다. 
“두 브랜드 모두 애슬레저(athleisure·가벼운 운동복) 브랜드면서, 라이프스타일 웨어를 지향한다. 앞으론 누가 라이프스타일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가 중요하다. 카파는 Z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브랜드다. 60년대 반전 정신이나 히피 문화가 녹아있는 데다, 80년대 이탈리아 축구팀 유벤투스의 유니폼으로도 잘 알려져 브랜드 유산이 상당하다. 큼지막한 재킷에 후드티를 받쳐 입고, 스니커즈를 신는 데 익숙한 요즘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만하다. 까웨는 3040 고객들을 잡을 수 있는 브랜드다. 라코스테·빈폴·헤지스 같은 일명 ‘트래디셔널 백화점 브랜드’라고 하는 카테고리에서 상당히 경쟁력이 있다. 합리적인 가격의 ‘몽클레르’다.” 
이탈리아 헤리티지 브랜드 카파를 재해석한 스포츠 컬렉션. 사진 롯데GFR

이탈리아 헤리티지 브랜드 카파를 재해석한 스포츠 컬렉션. 사진 롯데GFR

과거의 브랜드를 ‘재탄생’시키기 위한 전략은.
“창의성(creativity)이다. 셀린은 디자이너 피비 파일을, 지방시는 리카르도 티시를 만나 환골탈태하지 않았나. 최근엔 갭(GAP)이 카니예 웨스트와의 협업으로 이미지를 확 바꿨다. 우선 뛰어난 자질의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이미지 쇄신을 하겠다. 카파는 디자이너 브랜드 ‘본봄(BONBOM)’과 협업해 제품을 선보인다.”
코로나19 극복 기대감이 높아지는데 호재일까 악재일까.  
“코로나가 극복돼도 다시 정장을 갖춰 입는 쪽으로 가진 않을 거다. 과거엔 늘 차려입고 주말 정도에 평상복을 입었다면, 지금은 반대로 평소에 편하게 입고 가끔 차려입는 쪽이다. 이런 기조는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 같다.” 
지난해 브랜드를 정리하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매출이 2000억원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롯데는 그동안 브랜드 사업을 전문성 있게 하는 편은 아니었다. 브랜드 유치 경쟁에서 밀리다 보니 다른 회사에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브랜드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결국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새 집을 짓기위해 기존 건물을 청소하고 이제 땅을 파기 시작해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기초 공사를 잘해야 건물이 크게 올라간다. 그동안 건물 올라가는 게 안 보일 수도 있지만 기반만큼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 기반에서 중요한 게 뭘까.  
“사람과 브랜드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들고 그게 갖춰져야 좋은 브랜드가 온다. 샬롯틸버리나 까웨 모두 국내 패션 대기업들과 경쟁했다. 지금은 리더를 보고 들어왔지만, 앞으로는 롯데의 문화와 그에 따른 성과를 보고 브랜드가 들어올 것이다. 롯데도 이런 브랜드 사업을 잘할 수 있는 회사란 걸 보여주고 싶다. 포트폴리오도 요가·골프웨어·뷰티 브랜드 등으로 더 강화할 예정이다. 내년에 1700억원, 2025년 5500억원 매출이 목표다.”  
프랑스 현지에서 '윈드 브레이크'의 대명사로 통하는 까웨의 시그니처 라인. 사진 롯데GFR

프랑스 현지에서 '윈드 브레이크'의 대명사로 통하는 까웨의 시그니처 라인. 사진 롯데GFR

카파는 100% 국내 기획이다. 판권(라이센스)를 들여와 국내에서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해 판매한다. 까웨 역시 프랑스 본사와 논의하지만 약 50% 정도가 국내 기획력으로 현지화할 예정이다. 최근 내셔널지오그래픽·타이틀리스트처럼 해외 브랜드지만 한국이 운영하고 디자인해 다시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를 모범으로 삼아 해외 진출도 구상 중이다.

한국 기획 상품이 세계에 통할까.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도 해외에서 먼저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한국인의 기획력이나 디자인 파워는 세계 정상급이다. 우리도 한국에서 상품을 만들어 3~5년 내 해외에도 소개할 예정이다. 까웨의 경우 미국 파트너들이 먼저 한국 상품을 들여가고 싶다고 문의할 정도다. 카파·까웨 목표 매출은 2026년까지 3000억원이다.”
카파는 본사와 논의를 통해 한국 기획 제품으로 국내 사업을 전개할 예쩡이다. 사진 롯데GFR

카파는 본사와 논의를 통해 한국 기획 제품으로 국내 사업을 전개할 예쩡이다. 사진 롯데GFR

롯데그룹은 유통과 패션 부문에서 단기적 성과 부진에 빠져있다. 롯데GFR을 출범시켜 외부 전문가인 정 대표를 선임한 이유는 분명하다. 패션을 마중물로, 유통·소매부문 전반에 걸쳐 롯데 브랜드 파워를 재고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준호 대표는 "코로나19 극복 이후 많은 고객들이 거리로 나와 새로운 브랜드를 찾을 때 카파와 까웨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규 브랜드의 시장 진입 기회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사진 롯데GFR

정준호 대표는 "코로나19 극복 이후 많은 고객들이 거리로 나와 새로운 브랜드를 찾을 때 카파와 까웨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규 브랜드의 시장 진입 기회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사진 롯데GFR

유통회사에 브랜드 사업이 왜 필요한가.
“그룹에 다양한 사업 영역이 있고 정밀화학 같은 분야에서 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나지만, 결국 롯데라는 브랜드 이미지는 고객과 직접 만나는 유통·소매 사업에서 만들어진다. 유통기업의 사업 모델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바탕이고, 이 플랫폼만이 갖는 콘텐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브랜드다. 롯데GFR이 하는 사업은 롯데라는 플랫폼의 매력도를 높이는 일이다. 고객과 만나는 환경에서 얼마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그 역할을 브랜드 사업을 통해 하고 싶다. 지금부터 잘 만들면 5~7년 안에 판세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공하는 브랜드를 알아보는 비결은.  
“브랜드 본사의 경영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케팅 디렉터의 면면을 살펴보고 이들이 잘 조화를 이루는지 본다. 팀워크와 문화가 좋으면 시간이 걸려도 결국 성공하더라. 일하는 문화가 좋으면 ‘창의성’이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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