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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이는데 수익은? 요즘 백화점의 ‘생존 공식’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월 서울 여의도의 ‘더현대 서울’을 필두로, 지난달 20일 롯데백화점 동탄점, 27일 대전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모두 영업면적 8만㎡(2만4200평) 이상의 매머드급 규모로 지역 랜드마크를 표방하고 나섰다.
규모도 크지만 전시공간·실내정원·수족관·과학관 등을 내세우며 머물고 싶은 ‘복합 공간’을 추구하는 점도 비슷하다. 100가지 상품이 모여 있어 ‘백화점(百貨店)’으로 불렸던 과거와 달리, 상품보단 콘텐트로 꽉 채운 ‘요즘’ 백화점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체험의 전당된 신규 백화점 3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체험의 전당된 신규 백화점 3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일단 끌어모아라, 무기는 ‘아트’

최근 문을 연 백화점의 전략적 목표는 ‘손님 모으기’로 요약된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익숙해진 시대, 접근성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오프라인 매장은 일단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매력적인 ‘물건’만으로도 백화점에 갔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시대다. 요즘 백화점이 좋은 상품보다 매력적인 ‘경험’ ‘체험’을 제안하는 이유다.

백화점들이 가치 있는 콘텐트로 내세우는 건 예술 작품이다. 롯데 동탄점은 데이비드 호크니, 이우환, 박서보 등 100점이 넘는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곳곳에 포진시켰다. 백화점 최초로 오디오 도슨트(전시 설명) 서비스도 제공한다. 1층 안내데스크에는 예술품 안내 가이드가 따로 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에 전시된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 사진 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에 전시된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 사진 롯데백화점

대전신세계는 이름에서부터 ‘아트앤사이언스(예술과 과학)’을 내세운다. 대전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193m 높이의 아트 전망대엔 설치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 특별전이 열린다. 백화점 6층에는 ‘신세계 갤러리’가, 7층에는 과학관 ‘신세계 넥스페리움’이 위치한다. 수족관과 스포츠 테마파크도 곧 문을 연다. 신세계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닌 과학과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라고 했다.

대전신세계 6층의 '신세계 갤러리.' 12명의 작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대전신세계 6층의 '신세계 갤러리.' 12명의 작가와 디자이너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신세계백화점

실내정원, F&B로 체류 시간 늘려라

오프라인 소매업 전문가들은 요즘 백화점의 특징으로 ‘자연’을 꼽는다. 실제 여의도 더현대서울과 롯데백화점 동탄점이 모두 ‘중정형’으로 만들어져있다. 중정은 가운데를 크게 뚫어 실내 정원이나 광장을 만든 형태를 말한다. 브랜딩 전문가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는 “요즘 백화점은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엔터테인먼트형 백화점을 지향한다”며 “도심 안에서 자연을 느끼고 하는 심리를 실내 정원 형태로 백화점에 구현해 사람들을 되도록 오래 머물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 전경. 사진 현대백화점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실내 정원 '사운즈 포레스트' 전경. 사진 현대백화점

줄 서서 맛보는 유명 먹거리는 고전적이지만 사람을 끌어모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축구장 2개를 합친 것보다 큰 최대 규모 식품관을 만든 더현대 서울의 ‘테이스티 서울(1만4820㎡)’을 비롯,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전체 영업 면적의 27.7%를 식음 업장으로 구성했다.

이들의 특징은 인기 맛집들을 한 곳에 모았다는 점이다. ‘블루보틀’ ‘카페 APC’ ‘에그슬럿’ 등 국내에 몇 안 되는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조희숙 셰프의 ‘한국인의 밥상’, 유명 맛집이 연합해 만든 BBQ전문점 ‘수티’ 등 오리지널 매장도 갖췄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요즘 백화점 식음 매장은 ‘고급’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트렌디한 맛집 위주로 구성해 쉽게 접근하고 오래 머무르게 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분석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전체 영업면적의 약 27.7%를 식음 업장으로 채웠다. 사진 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전체 영업면적의 약 27.7%를 식음 업장으로 채웠다. 사진 롯데백화점

체험의 전당된 백화점, 수익은?

하지만 이런 체험형 매장은 매출이나 수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려도 낳는다. 규모는 커지고 투자비용은 늘었지만, 매출은 그에 비례해 극적으로 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 리테일 전문가는 “즐길 거리로 꽉 채운 대형 백화점이 한두 개 있었을 때는 집객만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비슷한 모델이 계속 나오면 규모와 체험거리만으론 지속가능한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가 아닌 체험과 경험의 공간으로 구성된 요즘 백화점 모습.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의 미디어 아트월. 사진 롯데백화점

소비가 아닌 체험과 경험의 공간으로 구성된 요즘 백화점 모습.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의 미디어 아트월. 사진 롯데백화점

결국 백화점의 강점인 차별화된 상품구성(MD) 역량을 제대로 펼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로 불리는 초고가 명품 브랜드나, 트렌디한 팝업 매장, 국내에 많지 않은 희소한 대형 브랜드의 매장 등을 유치하는 것이다.

최근엔 명품 패션 못지않게 고가의 디자인 가구, 리빙 제품이 또 다른 전략 상품이 되기도 한다. 백화점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백화점은 전체적인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정점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결국 명품 유치나 ‘포스트 명품’으로 불리는 고급 리빙 제품으로 수익성을 재고하는 쪽으로 갈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명품이나 희소 브랜드 유치 등 백화점 서비스의 본질인 상품 구성(MD)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생존 전략의 핵심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 현대백화점

결국 명품이나 희소 브랜드 유치 등 백화점 서비스의 본질인 상품 구성(MD)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생존 전략의 핵심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 현대백화점

백화점, 즉 오프라인 매장의 성과 지표를 바꿔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소비 트렌드 전문가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집객이 바로 매출로 연결되지 않아도, 사람이 모여드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이는 곧 백화점 온라인 매장의 매출과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체험은 오프라인에서,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온·오프라인 연계 전략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는 매출만이 아니라 방문객 수, 점유율, 재방문율, 인지도 재고 등 온라인 매출을 신장시킬 수 있는 주효한 수단으로서 오프라인 매장이 평가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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