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독점 노무공급권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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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부산항운노조가 130년 동안 독점해 온 부산항 노무 인력 공급권이 내년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노조원이 돼야만 일할 수 있는 '클로즈드 숍(Closed Shop)'은 사라지게 됐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부산항운노조.부산항만물류협회는 9일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부산항 인력 공급체제 개편 협약안' 조인식을 한다. 클로즈드숍은 지금까지 드러난 항운노조의 채용비리 등 각종 폐해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 왔다.

부두 운영회사는 그동안 노조의 위세에 밀려 필요 이상의 인력을 현장에 투입하는 등 불합리하게 인력을 운용해 왔다고 주장했다. 부두 기계화율이 높아지는데도 인건비를 줄이지 못해 경영난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부두회사들이 인력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어 항만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도급제에서 월급제로=노무인력 공급권과 함께 복지 조건과 월급.퇴직금 등도 산정 방식이 바뀐다. 대상은 부산 북항의 중앙.3.4.7-1 부두와 감천항 중앙부두 등 다섯 곳에 배치된 노조원 1263명이다.

우선 조합원의 고용과 정년(60세)이 보장된다. 또 작업 물량이 있을 때만 고용돼 일하고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도급제에서 상시고용(상용화)돼 월급제로 바뀐다. 월급은 올 4~6월 3개월의 평균 임금 수준으로 결정됐다. 퇴직금은 해마다 통상 임금의 1개월분을 더하는 방식에서 퇴직 연도의 통상임금에 근무 연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1인당 600만~700만원을 더 받게 됐다. 희망퇴직자에게는 생계안정 지원금으로 나이.근속기간 에 따라 최고 45개월치의 월급을 준다.

◆ 노조원 찬반투표 거쳐야=당장 넘어야 할 산은 조합원 찬반투표다. 노조는 조인식이 끝나는 대로 부두별로 협약안 설명회를 연 뒤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협약안을 받아들이자는 분위기가 대세여서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협약안이 가결되면 노조원들은 연말까지 모두 퇴직한 뒤 부두 운영회사별로 다시 취업해 근무하게 된다.

개별 부두 운영회사의 작업 형태와 임금 수준은 노사가 다시 협의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노.사.정이 공동 인력관리기구를 설립한 것은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인천항과 평택항도 내년부터 노무인력 공급체제를 상용화로 바꾸기 위해 노.사.정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강진권 기자

◆ 부산항운노조=1876년 개항한 부산항 노무자들이 결성한 단체. 부산 북항의 일반부두와 컨테이너전용부두, 감천항, 부산신항 등 26곳의 지회에 8600여 명의 인력을 공급하고 있다. 노무공급 독점권과 부두 작업의 특수성 등으로 조합이 폐쇄적으로 운영돼 간부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조합원 채용과 자리 배치 등을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2월 검찰의 채용비리 수사로 전.현직 노조위원장 등 간부들이 구속되면서 노무독점권 포기 선언 등 변화를 모색해 왔다.

◆ 클로즈드숍=근로자를 고용할 때 노동조합원임을 고용조건으로 내세우는 제도다. 사용자는 노조에 가입한 사람 이외는 고용할 수 없고, 노조를 탈퇴하거나 제명된 사람은 해고해야 한다. 직업별 노조가 노동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채택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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