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산책] 한강 선유도 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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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줄로 늘어선 미루나무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그 밑에 놓인 벤치는 가을볕에 한가롭다. 단풍색을 드러낸 나무들은 여기 저기 무심하게 서 있다.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으면 어느 시골길 모퉁이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들면서 이곳이 복잡한 서울의 한 구석이자 한때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이 있던 자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한강 가운데 섬인 선유도에 있던 정수장을 공원으로 바꾸어 개장한 지도 어느덧 1년을 넘어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유도 공원은 가꾸어진 공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모습을 더 닮아가고 있다. 군데군데 무리지어 흔들리는 갈대와 부서진 콘크리트 기둥에 감겨 올라가고 있는 빨갛게 물들어가는 담쟁이 잎도 그저 자연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선유도는 그 빼어난 경관으로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했었다. 그러나 겸재의 그림에는 높은 봉우리 모습이었던 선유봉이 1920년대 이후 한강 제방을 쌓기 위해 점점 깎여 나가 지금과 같은 평평한 모습으로 변했다. 1970년대 이후 선유도에는 정수장이 설치돼 한강의 물을 직접 끌어올려 정수해 수돗물을 공급했다. 그러나 2000년 말 정수장을 이전하면서 서울시는 선유도를 공원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현상설계를 통해 서안 컨소시움(조경설계 서안 + 조성룡도시건축 + 다산컨설턴트)의 설계안을 채택, 2002년 4월 26일 선유도공원을 개원했다. 서안의 설계안은 기존 정수장을 가능하면 보존해 그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원으로 활용하자는 개념으로 이루어졌다.

조경설계 서안의 정영선 대표는 "선유도 공간의 잠재력과 의미를 살리기 위해 유기적으로 구성된 정수시설들을 주목했다"고 밝혔다. 정대표는 "정수장의 '기억'을 간직하는 한편 환경교육에 알맞은 장소가 될 수 있도록 공원의 얼개를 짰다"며 "물 순환 시스템으로 엮어진, 풍부한 식생과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정원으로 꾸미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처럼 선유도에서는 물에 기대어 살아가는 다양한 식물들을 주제로 한 정원들이 물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본래 정수장이란 물을 끌어들여 정화하는 동안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런 물흐름은 여러 주제를 가진 정원들을 지나면서 그곳에 자리잡은 식물들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정대표는 "공장 터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공원들이 모두 과거의 흔적을 싹 걷어내고 잔디와 나무로 가꾸어지는 데 아쉬움을 느꼈다"면서 "선유도는 활동적인 공원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조용히 되새기고, 환경교육의 장도 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선유도공원에 남겨진 5개의 크고 작은 건물도 정수장의 지난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면서 건축물의 리노베이션이 어떠해야 하는지의 철학을 보여주는 정수다. 5개의 건물은 방문자 안내소와 한강전시관, 어린이의 자연학습장인 네 개의 원형공간, 선유정,카페테리아 나루 등이다. 건축설계를 담당한 도시건축의 조성룡 대표는 "새로 짓는 것만이 아니라 적절하게 제거하는 것도 건축"이라는 말로 선유도 공원 건물 리노베이션의 개념을 요약한다. 조대표는 "선유도 공원의 건축은 건축적 요소를 최대한 절제하면서 공원의 여백미를 살리려는 배려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선유도공원의 건축은 나무와 갈대와 풀과 수로 사이에서 으스대지 않고 마치 배경인 양 조용히 앉아 있다.

신혜경 전문기자
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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