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대논쟁 벌여보라/송진혁(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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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중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중추가절이 와도 세상일은 답답하기만 하다.
국회는 개점휴업을 계속중이고 정국은 언제 정상화될는지 감감할 뿐이다. 물가는 오르고 주가는 떨어지고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국제원유가는 불길하게 계속 치솟고 있어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총체적 난국」은 극복되고 있는지 악화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고 위기가 만성화된 나머지 이제는 위기에 대한 감각마저 둔해가고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안팎의 도전에 대응할 힘이 우리에게 없어서가 아니라 힘을 끌어모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현안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 안정감있게 추진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모든 일이 위태위태하고 불안하게 넘어가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대응을 둘러싼 심각한 이견이 그렇고 예산규모에 관한 시비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선지 40년이 넘도록 정부형태에 관한 합의도 없다. 소리만 무성할뿐 여태 지자제도 못하고 보안법도 못고친다.
어떤 문제에 있어 찬반이 있는 것은 좋다. 찬성만 있는 것보다 반대가 있는 것이 오히려 유익하다. 그러나 문제는 찬반이 하나의 결론으로 합쳐져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찬반이 평행선으로만 달리고 합쳐지지 않으니 국론이 갈리고 힘을 모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찬반을 대표해 합을 만들어낼 책임이 있는 정치권은 아예 직무를 유기하고 있고,정책의 유효한 집행의 바탕이 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제대로 국민에게 설명도 않거나 형편없이 낮은 설득력을 보일 뿐이다.
찬반을 종합해 하나의 결론으로 이끌자면 그 과정에는 논쟁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논쟁을 찾아보기 힘들다. 논쟁이 아니라 일방적 비난ㆍ비판ㆍ매도가 있고 일방적인 홍보가 있을 뿐이다. 가끔 TV토론이나 공청회가 있어도 자기주장만 밀고 나갈뿐 다른 의견의 수용은 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누가 옳고 그른지 판가름이 나지 않은채 대립만 계속된다.
우루과이라운드(UR)같은 것은 이미 4년전에 시작된 것인데도 미리 중지를 모으고 국론을 모아 보려는 노력조차 없었다.
없던 문제가 갑자기 생긴 것처럼 정부는 새삼 홍보부족을 한탄하면서 당황해 하며,농민단체는 시위를 벌이고 야당은 일대 공세를 펼칠 기세다. UR의 타결은 다가오는데 효과적인 대응책은 세우지도 못한채 「개방불가피」와 「결사반대」로 맞부딪치기만 하면 대다수 국민은 누구말이 옳은지 내용도 모르는 가운데 우리 국익만 떠내려 갈 것이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난국의 핵심이 되고있는 정국불안도 국민과는 상관없는 여야간의 고집대립으로만 계속되고 있을뿐 대립끝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황을 깨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제의를 한번 해보고 싶다. 요즘의 주요 현안을 둘러싼 찬반 당사자들끼리 한바탕 대논쟁을 벌여보라는 것이다.
굳이 논쟁앞에 「대」자를 붙이는 것은 토론을 다른 하나의 홍보무대로 생각하는 쩨쩨한 저의로 임해서는 안된다는 뜻에서다.
서로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밀고나갈게 아니라 밑천을 털어놓고 당당하게 국민앞에서 대논쟁을 벌인다면,우선 국민이 내용을 알게돼서 좋고,각자 주장의 정당성과 중요성의 비교등이 어느 정도 가능해질 것이며,그리하여 마침내 대립을 종식시킬 단서를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논쟁의 한쪽 당사자가 될 정부ㆍ여당으로서는 늘 「홍보부족」을 아쉬워 해왔는데 마음껏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할 호기가 될 것이다.
다른 한쪽 당사자가 될 각종 정치ㆍ사회세력들도 모처럼 정부ㆍ여당과 대등하게 국민에게 자기주장을 펼 무대를 가진다면 그 역시 좋은 일이다.
이런 논쟁을 어느 쪽이라도 기피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쪽이 지는 것이고 그와 관련된 대립은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ㆍ여당의 장관이나 간부가 논쟁을 회피한다면 그는 그 자리를 유지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대논쟁이 먼저 여야 당책임자간에 벌어지는게 바람직하겠다. 정국불안이 위기의 중요한 원천인만큼 여야당의 고위책임자간에 누가 옳은지,정말 공통분모는 없는지 대논쟁을 한번 벌이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올 국민여론의 향배와 양자간의 공통점,상대방 주장에서 옳다고 인정되는 점 등을 두루 합치면 여야간 대립을 끝낼 종합방안이 하나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여야 영수급의 대논쟁이라면 그야말로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중진팀간의 논쟁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
국민이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신물나는 기존논리의 복창 만으로는 안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서로의 논리가 다할때까지 논쟁을 벌인다면 그것 자체가 정치발전일수가 있고 뜻밖에 좋은 수확이 나올 수도 있다.
부총리와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경실련) 같은 민간단체 대표간의 대논쟁도 해볼만한 것이다. 물가ㆍ공공요금ㆍ소득분배ㆍ사회간접시설 확충ㆍURㆍ예산규모… 등 수많은 경제현안들에 관해 솔직히 말해 상당수 국민은 내용도 정확히 알기 어렵고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도 힘들다.
그런 문제에 관해 양쪽의 전문가끼리 일대 토론을 벌인다면 그 결과는 매우 유익할 것이다. 잘만 된다면 상당폭의 국민합의의 형성도 기대할만 하다.
이밖에도 정부와 농민단체간의 UR토론,전경련과 노총간의 노사토론,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간의 세대토론 등 할만한 대논쟁은 많다.
끝없는 대립이나 갈등보다는,한쪽의 불만ㆍ반대속의 정책강행보다는 대논쟁이라도 벌여 찬반을 종합하는 시도가 계속돼야 난국을 극복할 국민의 힘을 끌어모을 수가 있다. 그것이 또 가장 민주주의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논쟁을 제의하라. 먼저 제의하는 쪽이 논쟁의 기선을 잡을 것이다.<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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