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운동권출신 젊은이의 자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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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위 전력이 있는 대졸 청년이 자신의 그 전력 때문에 취직을 못하자 이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보도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다.
자살의 결정적 동기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은 시점이다. 그러나 시위 전력이 문제가 되어 입사시험과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여섯차례에 걸쳐 신원조회 과정에서 낙방했다는 사실은 그 청년의 자살에 충분한 동기부여를 했음을 뜻한다.
우리가 이 청년의 자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째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학생들의 무분별한 과격시위가 이젠 사회와 기업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살한 청년은 85년 대학생시절 민정당당사 점거농성사건과 87년 구국학생연맹사건과 관련되어 기소유예와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다고 한다.
비록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을 발휘했다 할지라도 불법적 과격시위에 가담한 성향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기업과 사회에서 고루 퍼져 있음을 말한다.
이런 분위기는 운동권의 과격시위와 노사분규의 소용돌이를 헤쳐나온 민주화의 갈등기간 속에서 그 명분이 어떠하다 해도 만성적ㆍ불법적 과격시위는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기업과 사회 속에 이뤄졌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6월 항쟁과 민주화 투쟁과정 속에서 선의의 참여를 했던 학생들마저 시위가담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직업을 얻지 못하고 사회에서 소외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여기에 청년의 자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두번째 이유가 있다. 산업화가 고도화될수록 사회는 갈등과 소외의 악순환을 거듭할 것이다. 건강한 사회라면 갈등과 소외로 멀어져가는 계층을 끌어당기고 감싸는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가난한 집안출신의 자제는 계급의식이 강할 것이고 시위가담자가 입사하면 해사행위를 할 것이라는 단순논리가 사회와 기업에서 통용된다면,그런 사회와 그런 기업은 경직되고 폐쇄될 수밖에 없다.
젊은 혈기로 한때의 무분별한 과격시위에 가담했다 해서 사회가 이들을 영원히 버린다면 그 결과는 갈등과 소외의 폭을 깊고 넓게 할 뿐이다. 새로운 대립과 분열을 확산시킬 뿐이다.
민주화 3년의 갈등과 진통을 겪은 지금,한 청년의 자살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합의해야 할 결론에 이른다. 결코 무분별한 과격시위가 사회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인식과 함께 갈등과 진통에의 전력을 이유로 그들을 냉대하고 배척한다면 그것이 또다른 사회의 갈등과 소외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더이상 갈등과 소외의 폭을 넓혀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무분별한 폭력시위는 이 땅에서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기업도 화해와 용납의 폭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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