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월남파병」될까 우려/군의료진 페만 파견결정 배경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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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 압력에 통상 등 고려한 “성의”/국회동의때 “고감도”쟁점될 듯
미국의 페르시아만 대처를 돕기로 한 정부가 2억2천만달러 규모의 현금ㆍ물자지원외에 군의료진 파견을 결정해 이것이 본격 파병의 서곡이 아닌가해 관심을 끌고 있다.
군의료진 파견은 비록 소규모 비전투요원이기는 하나 「파병」의 범주에 속하고 페르시아만 전쟁양태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확대될 소지가 있어 한국이 제2의 월남파병과 같은 코스를 밟지 않느냐는 성급한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해외군대파견은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규모와 형태에 따라서는 평민ㆍ민주 등 야당이 반대움직임을 강화할지도 몰라 이 문제는 올 정기국회중 고감도 쟁점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군의료진 파견에 앞서 민간의료진을 파견하는 방법도 검토해 왔으나 민간의료진은 모집방법ㆍ신분보장ㆍ급료등에 문제가 많아 포기하고 말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의료진 파견 규모는 군의관ㆍ간호장교ㆍ위생병등 1백명내외로 1개사단에 설치되는 「이동외과병원」수준이라는 것이다.
미측의 당초 지원요청대상도 아닌 군의료진 파견을 정부가 결정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정부는 우선 경제마찰ㆍ우루과이라운드 등 우리쪽에서 아쉬운 것이 많은 현안을 안고 있으면서 미측이 요구한 3억5천만달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또 중동에 거의 전적으로 원유공급을 의존하고 있는 처지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아울러 이웃 일본이 그들의 국내법 때문에 자위대 1백여명을 외무성 직원으로 신분을 바꿔 의료진으로 파견하기로 한 터에 우리가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외교적 부담을 안겨준다.
게다가 정부는 한국의 전투병력파견을 요청하는 미 의회ㆍ여론의 압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비전투요원 파견은 최소한의 성의 표시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관계자들은 『미 의회 청문회에서 솔라즈의원이 1개 여단규모의 한국군파견을 주장하는 등 미국쪽에서의 파병압력이 가중되고 있어 우리가 군의료진을 파견하면 압력을 어느정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외무부는 먼저 보사부에 민간의료진 파견검토를 의뢰한 적이 있으나 보사부가 『현실적으로 곤란하다』고 난색을 보여 군의료진을 대상으로 확정했다. 역시 「자원」보다는 강제성을 띠어야 동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의료진 파견은 정부결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국회동의라는 법적절차를 거쳐야 한다. 헌법 60조 2항은 「국회는 선전포고ㆍ국군의 해외파견 또는 외국군의 국내주둔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결정족수는 일반의안과 마찬가지로 과반수이상 출석에 과반수이상 찬성이어서 민자당만 결심이 확고하면 통과자체는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가 거세지고 국민에 대한 파병당위성의 홍보가 재야운동권을 누르지 못하면 시끄러운 정치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민자당은 정부의 결정에 이렇다 할 의사표명을 않고 있는 반면 야당은 곧 파병이 가져올 부작용을 강조하고 나설 태세다.
야당등이 제기하는 반대론은 ▲비전투요원 파견이 상황변화에 따라 전투요원파견으로 이어져 크게 말려들 우려가 있고 ▲파병이 이라크는 물론 아랍권을 자극,아랍민족주의의 타도 표적이 될 수 있으며 ▲당장 1백60여명의 이라크잔류 교민의 안전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은 『월남참전도 처음에는 의료진 등 행정지원부대 파견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만약 페만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자칫 전투요원파견으로까지 치닫게 될 우려가 없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의료진 외에 전투병력 파견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군의료진은 파견되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다국적군에 소속돼 쿠웨이트 난민은 물론 유사시 이라크 부상병까지 치료하게 된다』며 『따라서 이러한 인도주의적 측면을 고려할 때 아랍권은 물론 이라크도 큰 반감은 갖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직접 군대ㆍ함정을 파견한다는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페만지원금부담ㆍ군의료진 파견등에 이라크가 뚜렷한 반감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감지된다』며 『이는 이라크당국과의 접촉에서도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에 따르면 26일 현재 바그다드에 남아 있는 교민은 1백67명이며 그동안 이라크당국의 양해아래 꾸준히 철수가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내에도 의료진 파견후 전쟁이 확대되어 미국이 강력히 전투병력 파견을 요청하면 우리가 그것을 한사코 퇴짜할 수단이 없음을 실토하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책임있는 당국자는 『그때 상황을 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2억2천만달러라는 경제적 지원과 달리 군의료진 파견은 예민한 문제여서 정부는 면밀한 여론수렴 과정을 대비해야 할 것 같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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