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날과 일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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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국의 어떤 국영기업체에 근무하는 교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어떤 미국인직원이 사장에게 내일 하루는 집에서 쉬겠노라고 청탁했다. 그동안 업무 때문에 피곤이 쌓여서 하루 온종일 집에서 푹 쉬고 나오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묵묵부답이던 사장은 한참 후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했다.
『내일 하루만 쉬겠다고? 도대체 일은 언제 한단 말이오. 자, 따져 봅시다. 당신이 1년3백65일 중 진짜실제로 일하는 날은 며칠이나 되는지를 말이오.
우선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니 1년에 무려 1백4일을 쉬는 것이며 다시 말해서 1년에 2백61일밖에 일할 수 있는 날이 없다는 계산이오.
우리 회사는 당신과 같은 고참사원에게 1년에 무려 25일의 유급휴가를 주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나머지 일할 수 있는 날은 2백36일이오. 여기에 알다시피 부활절 연휴, 추수감사절 연휴, 크리스마스 연휴, 독립기념일, 노동절, 현충일, 워싱턴 생일 등등 이런 공휴일이 1년에 평균 15일이고 당신은 이런 날 꼬박꼬박 쉬지 않소. 그러니 나머지 일할 수 있는 날은 2백 21일 뿐이오.
회사에서는 또 1년에 4일간 병가를 인정해 주고 있는데 당신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아프건 안 아프건 병가 4일을 이 핑계 저 핑계로 다 찾아 먹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나머지 일할 수 있는 날은 2백17일이오.
또 계산해 봅시다. 하루 24시간중 근무시간은 아침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뿐이오. 결국 하루의 3분의 1만 일하는 셈이고, 따라서 나머지 일할 수 있는 날은 72일뿐이오. 근무시간 8시간도 다 일하는 건 아니지 않소. 매일 점심시간 한시간 외에도 커피 마시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신문 보는 시간을 모두 합해서 2시간으로 치 면 약 6일을 쉬는 셈이므로 나머지 일할 수 있는 날은 66일 뿐이오.
거기다 친척 누구의 결혼식이요, 누구의 장례식이요 해서 오후 내내 회사에서 빠지는 날이 1년에 평균 7일이나 되니 나머지 일할 수 있는 날은 59일뿐이오.
회사에서는 또 창사기념일과 오픈하우스 날을 매년 갖고 있고, 레크리에이션 데이라고 해서 역시 1년에 두 번 체육행사로 쉬고 있지요. 뿐만 아니지 않소. 당신은 1년에 두 번 씩은 1주일간이나 학술세미나·경영강좌 같은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오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나머지 일할 수 있는 날은 고작 41일 뿐이오. 그런데 또 하루를 집에서 쉬겠단 말이오? 나 원 참….』
물론 이는 극단적인 풍자적 얘기고 농담에 가까운 우스갯소리다. 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너무 일에만 파묻혀서는 살수 없으나 지나치게 놀기만 해서도 국가를 지탱할 수 없으며 본인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공휴일이 많은 10월을 앞두고 공휴일 조정문제 때문에 꽤나 복잡했었다.
올해는 특히 추석이 10월초에 들어 있어서 긴 연휴를 쉴 수 있게 되었다. 연휴라는 것이 원래 돈 있는 사람에게나 연휴이지 가난한사람에게는 괴롭고 속상한 것이 될 수 있다. 아직도 크게 잘살지 못하는 우리나라 연휴의 연속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소비만은 세계제일인 우리나라에서 연휴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백남옥<성악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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