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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파견,거기서 끝날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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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페만사태 지원에 넘지 말아야 할 선
페르시아만 지원 분담금액이 확정,발표되면서 그 적정규모 여부의 판단을 뒤로 미루고 더 큰 논란를 불러올 문제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금까지 거론되어온 물자ㆍ장비ㆍ서비스와 현금지원의 차원을 넘어 의료지원단 파견도 검토중이라는 꼬리가 덧붙은 것이다.
애초에 페르시아만 지원비용을 분담해달라는 요청이 제기되고서부터 확정되기 바로 며칠전까지만 해도 미국측은 우리의 상징적 지원에 만족할 것이라는 점이 강조돼왔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미국측의 요청에 인색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해왔다.
정부는 이번 결정이 국내외의 여러가지 여건을 검토한 끝에 내려진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명분과 이유를 들어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결정과정에서 많은 고충이 있었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2억2천만달러가 우리의 능력에 비추어 상징적 규모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든가 정부가 제시한 이유들 중에 이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번 결정이 이미 대외적으로 약속된 결과인만큼 찜찜하면서도 새삼 조목조목 재론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규모 문제에 대해서 이처럼 아직도 유보적인 터에 의료지원단 파견문제가 거론된 것을 보고 명분도 명분이지만 이제는 페르시아만 지원에 확실한 한계를 설정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우리는 믿는다.
당초 거론되지 않았던 문제가 한가지 문제에 대한 결론이 끝나면서 대두되고 있는 것은 다음에 또다른 것이 꼬리를 물고 제기되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과 그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페르시아만의 정세가 결국 군사적 충돌로 결판이 날 가능성이 커가고 있는 가운데 민간의료진보다는 군의료진의 파견으로 결정될 개연성이 많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비전투요원이고 인도적이라는 명분이 붙겠지만 일단 시작되면 사실상의 파병이 불가피해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될 경우를 우리는 심각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당초 의료부대 파견으로 시작했다가 대규모 전투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예를 우리는 월남전쟁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시와 다른 생황이다. 권위주의시대처럼 정부가 일방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미국의회 일부에서 한국군의 파병론이 대두되면서 의료진 파견 검토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미국정부가 종국적으로 그런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우리는 갖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정부는 종전처럼 정부에 압력을 넣으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우리의 변화된 국민의식에 비추어 잘못됐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로서도 남북한 관계발전에 민감하게 영향을 줄 안보상황에 변화를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대처하기를 촉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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