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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당겨질 남북동반|미-소-일-독학자「한반도장래」지상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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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동구의 세계사적 대변혁으로 동서냉전이 종식되고 그 결과 동서독이 통일되는 세기의 대전환 속에서 세계 신정치질서는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북한이 45년 분단을 종식하기 위해 남북 총리회담 등 활발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미소 등 한반도 문제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강대국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시각도 변화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창간 25주년을 맞아 동북아 및 분단국 통일문제에 정통한 세계적 학자들로부터 한반도 문제에 관한 견해를 들었다.
이들 학자들은 세계의 동서냉전 종식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긍정적 요소로 등장하고 있음에 모두 동의하고 이 같은 외부의 여건에 힘입어 남북한 양측은 실질적 문제 해결을 바탕으로 상호 양보하는 자세를 가질 것을 강조했다.
이들 학자들은 남북한 통일이 조기에 달성될 것이라는 견해에는 대체로 비관적 의견을 말하면서도 남북한 정상회담 등 제반 중요한 남북 대화성사 여부에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특히 소련의 한국문제 전문가인 게오르기 쿠나제 박사는 북한이 현재 정치·경제에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주장하고 북한이 당면한 이 같은 위기는 북한의 자체변화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으며 따라서 남북대화는 북한에도 매우 필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동북아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박사(버클리대 명예 교수) ▲소련의 한국문제 전문가 게으르기 쿠나제 박사(소련 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 한국연구부장) ▲서독의 독일통일문제 전문가 데틀레프 퀸박사(전 독 문제연구소장) ▲일본의 한반도문제 전문가 오코노기마사오 박사(소차목정부·경응대 법학부교수)들로부터 한반도통일에 대한 견해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통일 전망>
◇질문1=현재 세계는 두 가지 중요한 정치질서 변화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미국과 소련의 화해와 함께 세계평화로의 진행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국가들의 통일지향 움직임이다.
세계정세의 급변과 관련해 단기적으로는 90년대, 장기적으로는 2000년대의 변화에 대한 귀하의 전망은 무엇인가.
또한 한반도 재통일에 대한 귀하의 분석과 전망은 무엇인가.
▲스칼라피노=세계 주요 국가들간의 평화에 대한 전망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희망적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의 과정에 있다. 근본적으로 이 혁명은 인류의 과학기술발전이 만들어낸 가장 최근의 작품이다. 당연히 그것은 각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서 시기와 정도 및 시간상의 차이는 있더라도 전세계를 같은 영향권아래 놓이게 할 것이다. 이미 주요 국가들은 알다시피 각기 다른 형대로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한 국가가 절대적 주권에 기초한 정책을 고수한다는 것은 더 이상 실효를 거둘 수 없다.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정치·안보적인 문제에 었어서도 주변환경은 새로운 국가단위의 의사결정 과정과 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덧붙여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은 국내정치에서나 국제정치에서 모두 크게 쇠퇴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제무대에서는 경제가 항상 선봉에 서 있다.
현재 남북한 관계는 동아시아에서 해결되지 않은 지역문제들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서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질 전망은 현재로서는 밝지 않다.
한반도 긴장완화는 사전에 많은 예비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가운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남북한이 자국민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하며 각각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은 광범위한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 중단된 대화의 재개가 필요하다. 이 중요한 첫 번째 단계가 최근의 남북한 총리회담이며 이의 진전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한 국민들이 원하는 평화통일과 현존하는 상호 적대감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하겠다.
▲오코노기=냉전의 종언은 미소의 공동행동, UN기능의 활성화, 국제협력촉진, 군축·군비관리의 진전 등 현상승인을 기초로 하는 새로운 국체관계 형성을 재촉할 것이다.
그러나 현상승인을 거부하는 세력이 외부로부터의 평화적 해결 압력에 저항하기 때문에 냉전의 종언이 반드시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가져다준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한반도의 경우도 성급한 통일시도는 평화의 기초를 위험하게 할 것이다.
평화통일에 이르는 과정은 여러 단계가 있다.
그러나 평화적인 방법인지 어떤지는 별문제로 하고 2000년께 까지는 통일로 향한 기본적인 과정들이 계속 진행될 것 같다.
▲쿠나제=미소 양국관계에 있어서 현재의 발전적인 추세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다. 앞으로 발생할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선의와 공통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미소 양국관계가 국제사회에 전반적으로 미칠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확신한다.
다행스럽게도 미소관계와 전세계의 화해분위기는 한국의 통일문제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독일의 경험에서 한국이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통일을 위해 동독이 외교정책 방향뿐만 아니라 전체주의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 정치체제마저도 변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세계는 현재 길고도 지루한 재조정의 과정에 있다. 현실적 제반목적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는 이 같은 과정이 시작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퀸=국가의 분단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이 과거의 교훈이다.
독일분단의 극복은 유럽의 분단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진일보다.
이와 함께 유럽의 냉전은 이제 궁극적으로 종말을 고했다.
이같은 사태의 진전은 한반도 분단의 조속한 극복에도 희망을 갖게 한다.
특히 경제적 비효율성 때문에 공산권 국가들은 시장경제의 경제질서에 패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정권은 군비조달에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또한 국제적인 군축정책이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남의 할일>
◇질문2=한반도에서는 현재 통일에 대한 염원이 그 어느 때 보다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한국정부가 맡아야할 역할과 취해야할 정책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쿠나제=외교정책 분석가로서 남북한 양측은 서로가 상당히 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싶다.
남북한 통일을 위한 몇 가지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는 노력을 기울이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어쨌든 양측이 실제로 행동을 보아야할 절대적으로 중요한 선행조건이 있다. 즉 남북한은 상호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정부는 공식적으로 남한정부를 인정해야하고 남한도 북한을 실체로 인정해야한다. 양측정부는 또 서로 본격적인 대화를 해야한다. 책임있는 당사자간의 포괄적인 대화는 이 방법 외에 어떤 방식으로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 의한 독단적인 통일작업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
이같은 상대인정의 기초 위에서만이 사회 고위층에서부터 국민 저변에 이르기까지 모두 참여, 사회·경제·정치 등 제반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지난 남북한 총리회담에서 한 국민들의 뜨거운 통일열망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남북한 관계개선의 첫걸음은 경제협력에서부터 라고 생각한다.
남북한은 주변 국가들이 다른 한편과 접촉하는 것을 경계하거나 저지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은 소련의 대한 접근을 조정·저지할 위치에 있지 않다.
비록 북한이 소련의 대 한국관계 진전을 늦추려고 시도한다 하더라도 소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도 북한과 주변국가들의 접촉을 환영해야 한다.
이는 상식의 반영이며 한국의 북방정책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고집한다면 북한과의 포괄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오코노기=남북한은 10년 후(2000년)를 목표로 하는 「평화통일을 위한 조건정비」에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급한 통일의 구체화보다는 동아시아의 평화정착, 남북한 관계의 안정화, 국내정치·경제환경의 정비 등이 우선되어야만 한다.
특히 현재 기피하기 어려운 것은 이른바 「북한의 체제이항」, 즉 정치·경제체제의 민주화와 다원화다.
북한의 변화가 어느 정도까지 진전되지 않으면 「평화통일」의 조건은 갖추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북한은 스스로 체제변화를 향한 노력에서 실패할 경우 민중혁명에 의해 체제가 붕괴된 전례를 따라 「루마니아 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스칼라피노=남북 대화에서 진척이 이루어진다면 통일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과정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모든 장애를 일시에 없애버릴 장대한 계획이란 있을 수가 없다. 현실성이 없는 극적인 제안은 정치적인 말장난에 그칠 뿐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첫번째 단계는 남북한 정부의 상호 정통성 인정과 정부 차원에서의 원칙적인 대화를 유지하기 위한 자발적인 자세여야 한다.
그리고 상호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호인정과 신뢰구축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안보에 관해서는 양측이 비무장지대(DMZ)외곽에 배치된 군사력을 감축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교류의 시작도 역시 중요하다. 보통사람들의 상호 방문을 포함한 문화교류의 발전도 추진되어야 한다.
경제·정치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체제가 하나의 공통된 정치제도하에 놓인다면 통일은 단순히 피상적인 것일 뿐이고 한쪽이 다른 목을 파괴하려하기 때문에 잠재적인 위험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체제와 제도가 보다 잘 양립할 수 있는 형태로 통일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퀸=남북한 정부는 스칼라피노 박사도 언급한 것과 같이 남북한 인적교류의 확대를 통해 긴장완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상대방에 대한 편견의 불식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제조건이 마련될 수 있고 또한 상대방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정보를 서로 얻을 수도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토대 위에서 비로소 하나의 국가차원의 통일정책이 도입·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북방정책>
◇질문3=남북한은 서로 「대화」를 하면서 목소리만 높였을 뿐 별다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남북한대화가 커다란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북한 총리회담이 열리긴 했으나 역시 뚜렷한 실질적 진전은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비관론도 있다.
남북한 대화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나, 대 전환의 계기가 있다면 어떤 것일 수 있는가.
▲퀸=처절한 내전(한국전쟁)을 통해 분단된 한 국가의 두 당사자간 관계에 있어서는 종 종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를 정확히 예견 할 수는 없다. 분단의 극복과 국가의 통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코노기=현재의 남북대화는 여전히 「통일문제의 이니셔티브 쟁탈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치적 타협을 위한 토대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민주화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실현해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우위」를 확립할 때까지 치열한 경쟁은 계속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두 번째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실현될 93년 이후, 그리고 북한 김일성 주석이 건재할 동안에 정치적 타협을 위한 기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기본적인 내용을 유지하면서 그것에다 「고려 민주연방공화국」이란 명칭을 붙여 북한에 타협의 명분을 주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쿠나제=앞에서 이미 언급한 남북한 상황하에서 당장 남북한 관계에 돌파구가 열리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러한 나의 예상이 빗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남북한 총리회담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견해의 근거를 마련해 주기는 했다.
적대관계를 유지해 왔던 남북한의 고위급 관리가 46년만에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만남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으나 그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다음번 10월의 평화회담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게 된다면 3차 회담에서 매우 낙관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대화창구를 전면 개방하는 것은 다소 어렵다 하더라도 이에 실망하지 말고 한국측은 정적인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스칼라피노=앞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남북한간의 교착상태는 양측이 서로 정통성을 인정할 때에만 종식이 가능하다.
여기서 잘못은 주로 평양측에 있다. 평양은 한국정부를 군사주의, 파시스트 괴뢰도당으로 몰아붙이면서 다양한 정치반대 세력들과의 접촉을 시도, 연합전선 정책을 계속해서 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정치적인 다원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인구와 경제력이 뒤지고 있는 북한에는 이 같은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측은 요즘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태우 정부와 협상을 할 의사가 있다는 징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모두 환영해야 할 일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은 현실적인 제안만을 내놓아야 하고 통일문제에 대해 한국의 정치형태만을 고집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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