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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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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질문4=한국의 북방정책은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수립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있다.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한 소 정상회담은 한 소 외교관계 수립시기를 당기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북방정책에 대한 평가와 한국정부의 통일을 위한 대외 외교노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스칼라피노=의문의 여지없이 한국의 북방정책은 적절한 시기에 추진되었기 때문에 매우 성공적이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중대한 경제개혁을 시행하고 있다.
이 같은 개혁의 방향은 경직된 국가통제를 완화하고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른 여러 나라들과 함께 한국도 사회주의국가 개혁론자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앞선 기술과 높은 제품의 질, 그리고 투자다..
경제는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북한의 불쾌감 표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신속히 정치적인 관계를 맺었다.
중국과의 경제관계도 급속히 팽창했다. 한국의 대 중국 무역규모는 연간 30억 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분야가 제한되긴 하지만 한국의 대 중국 투자가 진행되고있다.
현재 중국은 평양과의 정치적인 결속을 확인하면서 한국과 경제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정경분리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동구는 정치적 다원주의로 나가고 있으며 다당제와 광범위한 정치적인 자유를 수용하고있는 반면 아시아의 레닌주의 국가들은 레닌주의의 명제를 계속 유지, 공산당 일당독재를 고수하고 있다. 또 정치적인 자유도 극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은 당분간 한국과의 외교적인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룰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더욱 활발한 경제교류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교류의 바탕을 마련할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은 대한관계에 있어서 매우 상징적인 샌프란시스코 양국 정상회담을 가짐으로 해서 양국관계 개선에 커다란 진전을 보였다.
이에 대응해 북한도 지금 일본·미국과 관계개선을 모색해야하는 입장에 놓여있으며 실제로도 이미 다양한 방법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쿠나제=한국의 북방정책은 현명하게 계획되고 매우 잘 수행되었다고 본다. 북방정책이 효과적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특히 소련의 신사고와 결합돼 더욱 바람직했다. 한국 북방정책에서 주요한 한가지 기본원칙은 한국이 소련·중국, 그리고 동구 여러 나라 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고립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한국의 현 북방정책은 남북대화를 이끌어 내는데 어떠한 근본적인 진척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고 잘 알려진 것이다. 즉 북한의 자세가 경직돼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말 필요한 것은 인내심을 갖고 서두르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북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언급한바와 같은 서로가 성숙한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하루 빨리 정착시켜야 하는데 있다.
남북한은 경제적·군사적인 측면에서 모두 「법률적으로 동등」해야만 한다. 한 국민들은 북한주민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북한이 현재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의 정치적·경제적 어려움은 주변국가들의 우려를 사기에 충분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어려움은 자칫 북한내부에서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일 북한이 중대한 자체위험에 빠진다면 한국측 입장도 매우 어렵게될 것임은 당연하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딛고 서서 자신의 이익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한 국민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반면 북한주민들은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한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보다 관대하고 수용적인 입장을 보여야 할때다.
남북한 국민은 결코 적이 아니라 친구이자 동포이기 때문이다.
▲오코노기=북한에 내부적인 「체제 이행」노력이 보여지지 않는 이상 외부로부터의 영향력 행사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북방외교의 직선적인 진전은 남북대화에 장애를 가져다줄 뿐 아니라 북한을 고립화의 길로 유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북한을 개방·개혁의 길로 유도한다고 하는 한국 북방외교의 기본적인 이념에도 배치된다.
한편 북한의 개방·개혁을 촉진하고 그 「체제이행」을 확실히 하기 위해선 북한과 서방국가들간의 실질적인 경제·기술교류의 증대가 중요하며, 이것은 그 어느 것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북방외교가 만능이 아닌 이상목적을 잊지 않은 절도있는 정책수행과 주변국가들의 대북 외교와의 조정·연대가 바람직하다.
형식보다는 실질이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퀸=남북한 관계의 진전과는 별도로 한반도의 통일이 한반도 주변국들의 이익에도 합치된다. 남북한은 모두 이 점을 주변국들에 확신시키는 것이 한국외교의 본질적인 임무가 될 것이다.

<정상회담>
◇질문5=남북한 정상회담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스칼라피노=노태우-김일성 정상회담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측이 양측문제 해결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에 달려있다. 이것이 남북한 정상회담의 조기 성사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양쪽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신호가 될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상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정상회담이 일반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드물지만 양측이 비준 가능한 수준의 합의에 필요한 공식적인 절차를 줄여주는 시한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특히 적절한 준비 없이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로 이 점이 현시점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이 불투명한 이유다.
▲쿠나제=남북한 관계 개선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어떠한 정상회담도 확고하고 또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열리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어떻게 세심한 사전 준비를 하느냐의 문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남북 정상회담이 현재로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남북한과 같이 특수한 경우에 있어서는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상징적인 중요성이 근본적인 결과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퀸=이미 남북한 총리가 만났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 또한 전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오코노기=남북한 정상회담이 수년 후에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이 내 견해다.
그 이외에는 남북한간에 정치적 타협의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미소 역할>
◇질문6=한반도 통일문제에 있어서 미국과 소련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칼라피노=지난 5년 동안의 미소 관계개선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45년 이후 처음으로 미소는 자신들의 국가 이익이 침해받지 않는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도 협력할 수 있게됐다. 더욱이 한국과 광범위한 접촉을 시도하는 소련의 최근 움직임은 이 지역과 관련된 모든 주요국가들에 현실적인 정책 무대를 제공하고있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개선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미국은 남북한 관계의 발전속도에 크게 앞서지도 않을 것이며 크게 뒤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북경에서 진행중인 회담을 통해 미국은 공식적인 장소에서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장소에서도 북한대표와 기꺼이 모든 문제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더욱이 주한미군의 감축 시간표가 이미 제시되었다. 의심할 바 없이 철군은 계속될 것이며 그 속도와 범위는 남북한 관계를 포함한 많은 변수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북한은 미국·북한 양자간의 대화 및 팀스피리트 훈련의 중지와 남한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핵무기 철수라는 두 가지 점에 중점을 두고있다. 북한의 정책은 두 가지 문제, 특히 핵무기 문제에 정치적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관련 안보의 관점은 사실상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한측 요구대로 한국지상에 배치됐을지도 모르는 핵무기를 철수한다해도 해상에 배치된 핵무기 역시 강력한 것이다.
팀스피리트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유사시 대 한국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한미 연합군사력의 과시이며 이 군사력은 훈련을 통한 과시 없이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뢰구축 조치에 참여하겠다는 자발적 의사를 보여 준다면, 그리고 일련의 화합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미국에 적절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퀸=한반도문제의 해결은 무엇보다 한반도 내에서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또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은 신중히 영향력을 행사, 남북한의 접근과정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현재의 한반도. 대립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미국과 소련 양국의 이익에도 합치되지 않기 때문에 두 나라는 남북한에 각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오코노기=주한미군을 유지하는 미국은 정면으로 대북한 정치적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특히 남북대화의 구체적인 진전과 북한-미국 관계개선을 연결하는 현행의 입장은 계속 유지돼야 할 것이다.
중개자 내지 조정자의 역할은 오히려 남북한 쌍방과 관계를 맺고 북한에 대해서도 강력한 입장에 있는 소련이 맡아야 한다.
그 외에 북한에 대해 중국은 「신경안정제」로서, 일본은 「유혹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미소양국을 포함한 어떠한 나라도 한반도 통일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 쌍방이며 당사자간의 타협이 문제해결의 불가결한 전제란 입장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쿠나제=미소 양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오코노기 교수가 지적한대로 통일문제를 남북한 당사자에 맡기고 관망하면서 남북한 정부당국이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을 경우 이를 지원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미소 양국은 모두 한반도문제에 있어서 경쟁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미소양국이 국토분단이라는 특수한 한반도 상황을 낳은데 커다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한국측에 의해 여러 번 제기된바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책임당사국인 미소양국에 결자해지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매우 비현실적이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미소양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자칫 스스로의 책임한계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분명 미소양국에 있으나 이는 50∼70년대에 걸친 불행한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지금은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미소관계가 크게 호전됐다.
미소양국은 원활한 국제관계의 부활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선 소련은 국제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결의 이니셔티브를 쥐려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을 「외부적 장애」는 대부분 제거됐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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