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당신, 내 말 듣고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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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당신, 내 말 듣고 있어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푸른길

이런 말, 성인 여성이라면 한번쯤 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남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신문에 코 박고 있거나 TV에서 스무 명의 남자가 공 하나를 쫓아다니는 걸 넋 놓고 바라보는 남친이나 남편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 상황을 제목으로 하는 이 책은 사랑에 관한 11개의 일화가 담긴 소설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남자가 '부끄럽지도 않아! 이런 바보 같은 걸 보고 있다니!'라며 TV 채널을 테니스 경기로 돌릴 때도. 당신이 구두약 사는 걸 깜박했다는 빌미로 비싼 화장크림으로 남자가 자기 구두를 반짝반짝 닦을 때도. 당신의 장바구니를 뒤지며 '속옷 가게 차릴 거야'라고 비아냥거릴 때도."

이건 '제10장 당신의 화를 돋우는 남자의 단점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당신은 남자에게 익숙해지는 법, 그러니까 양보하는 법을 배운다는 이야기죠. '결점 없는 말을 타려는 사람은 걸어가야 한다'는 격언으로 시작하는 여기에는 남자에게 절대로 하지 않는 말들이 생긴다고도 하네요.

"내가 미장원에 다녀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죠?"-'상감마마'의 관심은 더 중요한 곳에 있다.

"내 의견을 물어볼 수도 있었잖아요"-진정한 남자는 여자 의견 같은 것은 묻지 않는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요!"-여자란 늘 무엇인가 잘못하는 법이다.

"당신 운전솜씨가 엉망이에요"-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들이 이런 꿍꿍이, 혹은 생활의 지혜를 품고 사는 줄은 이 작가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책에는 온갖 사랑이 나옵니다. 사랑에도 왜 단계가 있다지 않습니까. 티격태격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아이 적의 '강아지 사랑', 대중스타 등을 우러르고 꿈만 꾸는 사춘기의 '송아지 사랑'을 거쳐 정신적.육체적으로 함께하는 성숙한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얘기 말입니다. 이 책에는 재혼에 이르는 70대 시어머니의 뭉근한 사랑, 담임 선생님을 향한 일곱 살 손자의 풋사랑, 수시로 애인을 갈아치우는 20대 막내딸의 자유연애, 30년 넘게 이어진 50대 주인공 부부의 금실 등 야단스럽거나 아기자기하거나 기가 막힌 이야기를 엮어냅니다.

출판사 측 말로는 작가가 '프랑스의 김수현'이랍니다. 실제 평가가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일상에서 있을 법한 사건을 해부하고 요리하는 솜씨가 예리합니다. 감각적이면서 재미있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책에 나온 생활의 지혜를 귀띔합니다. 주말에 TV만 끼고 뒹구는 남편을 응징하는 법입니다. 리모컨을 가지고 외출해 버리랍니다. 채널을 바꾸느라 애를 쓰다 보면 달라진다네요. 책의 화자(話者)는 '당신'입니다. 작가 자신이면서 독자이기도 한 인물이지요. 그렇습니다. '당신'도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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