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등쌀­민심사이 절충고심/페만 분담금 어떻게 얼마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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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석유보험료 삼아 현물지원 흥정
페르시아만 지원분담금 액수를 둘러싼 한미간 막후 흥정이 뜨겁게 진행중이다. 『미국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는 명분아래 동맹국의 지원을 끌어 모으고 있는 미국이 지난 7일 브래디재무장관을 통해 요구한 금액은 4억5천만달러.
금년에 ▲현금ㆍ물자ㆍ용역지원 등 대미 국방비 보조 1억5천만달러 ▲이집트ㆍ시리아ㆍ요르단ㆍ터키 등 이라크 봉쇄에 꼭 협조가 필요한 인접국에 대한 경제협력 1억달러 등 2억5천만달러이고 내년엔 두 항목에 각각 1억달러씩 2억달러를 내라는 것이다.
이미 약속한 부자나라인 일본의 40억ㆍ서독의 21억달러에 견주면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악화된 경제사정과 수해 등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선뜻 내줄 만한 규모가 아니다.
다만 정부로서는 원유공급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처지에서 미국의 협조요청을 거부하기 어렵고 또 어느 정도 기여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떳떳하다는 판단에서 분담금을 내되 우리 능력에 맞게 내겠다는 입장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이 부담하는 수백억달러에 비하면 2억∼2억5천만달러 정도는 적은 액수지만 우리가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며 미측도 이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우리에게 1년에 3억2천만달러의 추가부담이 돌아와 「보험료」 삼아서도 내기는 내야 할 형편이다.
현재 서독ㆍ일본 외에 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ㆍ아랍에미리트연합이 합쳐 1백20억달러를 약속했고 군비는 아니지만 터키ㆍ이집트 등에 대한 차관형식으로 EC가 20억달러를 내놓았다.
이밖에 이탈리아가 1억4천5백달러,특히 대만이 2억∼3억달러를 부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영국ㆍ프랑스는 군비 대신 함대ㆍ지상군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관계자는 일본이 다국적군 유지비 20억달러와 이집트 등 주변국가에 연리 1∼4%의 장기저리차관 20억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나서 GNP가 일본의 20분의1인 우리로서는 최소한 2억달러 정도는 내놓아야 체면유지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를 공개리에 논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수용할 만한 선이 불확실하고 자칫 우리 젊은층에 반미감정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8일 오전 이승윤부총리 주재로 외무ㆍ국방장관,청와대경제수석,외교안보보좌관 등이 참석한 고위대책회의를 가졌고 지난주부터 3∼4차례 경제기획원ㆍ외무ㆍ재무ㆍ상공ㆍ동자부 등 관계부처 실무회의를 열어 지원방법ㆍ동원물자 등을 협의했다.
우리측은 숙의 끝에 ▲현금 무상지원은 최대한 줄이고 ▲쌀 등 우리의 여유물자를 집중 활용하며 ▲용역제공을 많이 포함시켜 지출액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도록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는 미측의 현금요구에 대해 ▲주한미군 방위분담 ▲무역수지 적자와 10억달러에 이르는 대이라크 건설 미수금 ▲수해복구비 부담 등을 들어 설득하기로 했다.
대신 현재 1천5백억원(2억달러) 정도 남아 있는 연리 3%의 EDCF(대외협력기금)를 이용해 대이라크 봉쇄에 참여해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는 터키ㆍ이집트ㆍ요르단 등에 1억달러 규모의 장기저리차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 대한 식량지원도 주요 항목이다.
한 고위소식통은 『약간의 품종 차이는 있으나 우리가 여유있는 쌀이 이들 나라에 효과적인 식량지원이 될 수 있어 가급적 많이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전했다.
우리측은 나머지는 의류ㆍ텐트ㆍ방독면ㆍ의약품 등 물자지원과 용역제공을 하기로 했으며 관계부처 실무회의에서 각 부처가 동원가능한 품목을 수집ㆍ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또 대미 직접 지원이란 차원에서 미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항공기ㆍ선박 제공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측은 페만 지원금의 예산집행을 위해 우선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2차 추경예산안에 예비비 항목으로 7백억∼1천억원 정도(1억∼1억5천만달러)를 계상하기로 당정간에 의견을 모았다.
미국이 이같은 액수를 받아들이더라도 정부는 국민반응에 무척 신청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국제수지 적자폭이 다시 커지는 등 전반적인 경제사정이 나빠지고 있고 수해까지 겹쳐 3천억원(4억3천만달러) 이상의 긴급자금이 필요한 마당에 『남의 나라에 공짜로 돈을 주다니 무슨 소리냐』는 볼멘 소리가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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