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방분산 더 미룰건가/이헌재(시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엄청나게 쏟아져 내린 폭우로 인해 곳곳에 물난리가 나고 서울시의 교통은 완전 마비가 되어버렸다. 서울시가 지닌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커다란 피해였다.
얼마전 서울시는 넘쳐 흐르는 교통인구와 터져나갈 듯한 교통망을 해결하기 위하여 지하철공사의 조기착공에 2천2백억원,도시고속화도로건설에 7백52억원,간선도로망 확충과 교통운영체계 개선에 6백여억원등 소위 교통난 대책을 위한 긴급자금으로 3천6백18억원을 투입키로 했다고 한다.
○인구 7할이 대도시인
이 정도의 규모가 긴급자금이라고하니,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뾰족한 대책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또 얼마나 방대한 규모의 투자를 해야만 할것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수도권 주변에 폭증하는 주택수요에 맞서 일산ㆍ분당ㆍ산본ㆍ평촌 등지에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의 주택단지를 건설한다고 하더니,그 다음에는 상수도 부족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된데 이어 이번에는 뜨거운 한여름을 지내면서 전기공급의 절대부족이 논란되는 등 문제거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때그때 임시 방편으로 꾸려나가는데에도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자금과 재원의 집중투입이 요구되는 판이다. 지금 우루과이라운드라해서 농촌이 발칵 뒤집혔지만 이러한 농촌문제의 해결이라야 서울시의 긴급자금중 일부만으로도 뒤집어 쓰고 남는다고 한다니 그 크기는 비교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대해 우선 두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첫째는 간단한 경제원리의 하나로 어떠한 투자나 생산에 있어서든 적정규모에 이르기까지는 규모의 이익때문에 한계비용이 줄어들지만,일정규모를 넘어서부터는 규모의 불이익이 생기고 한계비용이 급격히 상승한다는 것.
지금도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는 우리인구의 7할이상이 모여살고 있으며 이러한 대도시들이 집적의 불이익으로 엄청난 자원낭비의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은 직접ㆍ간접으로 여러 가격에 전가되고 곧바로 우리경제의 대외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갖가지 공해를 집중시킴으로써 나날이 생활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으며 경제의 안정기반마저 위협하고 있다. 상하수도와 전기공급의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운동장 없는 학교가 묘안이라고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성장기반을 잠식하고 심한 불편을 야기시키고 있는 집적경제의 불이익이다.
둘째로 하나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한여름철 어느 하루 고개를 사이에 두고 양쪽 아래마을에 사는 두 청년이 막걸리를 한동이씩 짊어지고 올라가 술장사를 해보기로 하였다. 막상 자리는 차려놓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술이 팔리지를 않자 더위에 지친 한 청년은 자신의 동전 한닢을 꺼내주고 막걸리 한 사발을 사서 들이켰다. 얼마 안있어 동전 한닢을 받아들인 다른 한 청년은 그 돈을 다시 상대방에게 건네주면서 자신도 한사발 사서 마셨다.
이렇게 하여 동전 한닢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상대방의 술을 다 퍼마시고 말았다.
실질소득의 증가없이 자원의 낭비만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서울시에 모여사는 수많은 사람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서로가 서로의 수요를,특히 서비스의 수요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각종 투기를 유발함은 물론 화폐소득의 증가라는 환상속에서 거품을 부풀리고 계속적으로 규모를 팽창시켜왔다. 자원의 획득을 위해 외화를 벌어들여야 하는 제조업은 뒷전에 밀어둔채 서비스수요만을 부풀림으로써 자원의 소모만이 아니라 생산적 사용이라는 기회의 상실과 같은 낭비까지 불러 일으켰다.
○미봉책뿐인 인구정책
수도권의 인구분산내지 정비대책의 필요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동산투기대책과 마찬가지로 3년이 멀다하고 주기적으로 나타나지만 결과는 매년 수도권 확장과 비대해진 수도권의 문제해결을 위한 미봉책에 급급해 왔다.
이제는 보다 본질적으로 생각해볼 때다. 서울시는 하나의 엄청나게 큰 자석이 되어서 인구를 끌어들이고 있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인구흡인력을 가지고 끌어당긴다.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막을 수가 없다.
섣부른 보완적 투자는 그 자체가 또다시 추가적인 인구집중을 유발한다.
여기에다 소득 5천달러때부터 시작된다고 하던가. 소위 사회의 자동차화시대(Motorization)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되면 가구당 한대씩 적어도 5백만대 이상의 차량이 서울시를 둘러싸고 집중될 것이다.
이쯤되면 도로를 넓힐 수 있을 만큼 넓혀도 모자랄 수 밖에 없다. 계속해서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으로 돈만 처들이게 될 것이다.
더이상 늦기전에 근본적인 탈수도권 정책을 펴야한다. 그렇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투자는 일자리와 사람을 불러 일으켜 문제를 유발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또다시 투자를 계속해야만 하는 악순환의 쳇바퀴를 돌리게 한다. 서울시에 사는 것이 애초부터 비싸고,불편하고,지저분하다고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지역평형세도 한 방법
서울시에 살다가는 좋은 대학은 고사하고 출퇴근이 고역스러우며 각자가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을 만큼 그렇게 불편한 대도시 생활이 되어야 한다. 대신에 농촌과 지방은 활성화시켜 지역평형세를 물린다든지,서울시의 재원을 의식적으로 지방등지에 교부한다든지 하여 재원을 지방으로 환류시키는 지방육성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의 문제만 보더라도 우리의 정책적 대처는 정말 하루하루를 때우며 사는 일용노동자적 성격과 다름없고,하루살이식 시야에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당장당장의 해결에 기대고 안주함으로써 미래에는 더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누적시켜 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어차피 앞날을 미리미리 내다보고 앞서서 대처해나가는 프로메테우스의 선각적 지혜가 없는 바에야 최소한도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수습해나가는 에피메테우스의 후각적 대처능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한국신용평가㈜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