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할 일 따로 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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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치지도자와 여야정당은 국가가 대재앙을 맞으면 마땅히 하던 싸움도 멈추고 그 재앙을 극복하는 노력을 발휘하고 민심을 평상으로 돌리는 데 진력해야 마땅하다.
정치판의 어떤 이해다툼이나 시비논쟁도 국가와 국민이 직면한 대재앙과 고통을 복구ㆍ치유하는 것보다 우선할 수가 없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국가가 있어야 정치가 비로소 활동의 공간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물이 없는 곳에 고기가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너무나 평범한 상식이다.
60여년만의 큰 물난리 끝에,1백50여명의 사망ㆍ실종자,17여만명의 이재민,그리고 엄청난 재산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우리 정치권의 대응자세를 보면 정치지도자들의 사리분별력과 자질을 다시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 지도자들은 대재앙의 피해를 하루라도 빨리 복구ㆍ치유하는데 정치권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찾아야함에도 본말이 전도된 행동에나 경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야가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수해피해자와 수해지역의 피해상황을 돕고 원상을 회복토록 제도적 뒷 받침을 해주는 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는가. 그렇다면 여야는 정부를 독려해 피해복구를 위한 추경예산안을 긴급 제출토록 해서 한시라도 빨리 심의ㆍ의결해 정부로 하여금 빠른 시일안에 집행토록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이번 수재에서 인재에 의한 피해의 책임도 따지고 허술한 사전방비로 또 다른 재앙이 일어날 곳은 없는지를 점검토록 하며 재해발생시의 민관의 신속하고도 적절한 제도적 대응 방안을 세우게 하는 것 등을 정부에 촉구하는 것이 그 순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수해로 정치는 일단 「휴전」하여 수해복구에 전력한다고 해 놓고는 정작은 한창 진행중인 수해복구와 사후대책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관청에 가서 관폐나 끼치면서도 국회를 정상화할 방도를 찾는데는 열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가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한 판별력도 없고 무엇이 사태해결의 우선순위인지도 가름 못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자질에 이재민들은 두번 울어야 할 지경이다.
이재민 위문을 위해 뻔질나게 피해현장을 둘러보면서 관의 업무에 장애만 주는 여당지도자들이나,국회 바깥에서도 정부와 수해복구대책을 논의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야당지도자나 모두가 맹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정기국회는 우루과이라운드등 기존 중대현안 말고도 지난 1년간의 국정감사,새해 예산안 심의,그리고 산적한 주요법안 심의를 위해 날마다 철야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여기에 민생을 위협한 천재까지 겹쳤는데도 명색이 정치지도자들이라는 여야선량들이 평시처럼 체면치레와 힘겨루기 놀음이나 할 때인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이라면 적어도 국민의 재산과 생명이 심각하게 손상받고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민은 아랑곳 않고 부아만 돋우는 짓만은 하지 않아야 한다.
야당은 엄청난 천재를 만난 위기상황에서는 좌고우면함이 없이 즉각 등원하는 것이 당당한 자세며 또 그것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 첩경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편 여당은 이에 대응해 최대한 성의있는 자세로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정치의 신뢰회복에 진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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