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BIS 비율 왜곡 이강원 전 행장 주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달 26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의혹사건의 증인으로 나온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左),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中), 김형민 외환은행 부행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의혹 사건'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이씨"라고 밝혀 수사가 정점에 이르렀음을 내비쳤다. 그는 "이씨에 대한 수사 기록만 60여 권의 책 분량과 맞먹고, 영장에 첨부된 수사 기록도 3만여 쪽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전체 증거물은 350박스이며, 전자문서도 180만여 건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 "BIS 비율 제대로 산출 안 돼"=검찰은 8개월간의 수사 끝에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핵심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이씨의 주도로 왜곡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이 불법 행위에 의해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BIS 비율을 제대로 산정했는지가 당시 매각 결정의 합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채 수사기획관은 "BIS 비율이 조작됐다고 단정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제대로 산출하지 않은 부분이 곳곳에 있다"고 말했다. 매각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BIS 비율을 낮추는 방법 등으로 은행을 팔아야 한다는 논리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은행을 팔기 위해 자료를 조작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은행 매각이 결정된 상황에서도 적정 가격을 산정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채 수사기획관은 "이로 인해 외환은행과 그 주주들에게 얼마만큼의 손해를 입혔는지 정확한 액수를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액수를 특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환은행은 매각을 앞두고 삼일회계법인에 실사를 맡겨 세 가지 안을 받아본 뒤 그중 순자산가치가 가장 낮은 안을 가지고 협상했다. 검찰은 외환은행의 주당 협상 가격이 적정가보다 1700원 정도 적은 4200원 선에서 결정돼 6000억~9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씨는 당시 협상을 주도하면서 외환은행 이사회에 보고하는 관련 자료를 왜곡했고 이를 근거로 이사회의 매각 승인을 받아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씨의 개인 비리가 드러난 점도 주목된다. 이씨는 행장 재직 당시 차세대 뱅킹 시스템과 전국 외환은행 지점의 인테리어 개선 사업과 관련해 납품 업체들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 "로비 실체 규명에는 한계 있을 듯"=채 수사기획관은 "단독 범행인지 변양호(52.구속)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과 공모했는지는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김진표(59)씨와 청와대 정책수석을 맡았던 권오규(55) 경제부총리 등 전.현직 고위 경제관료들을 모두 조사했다. 남은 사람은 론스타의 법률 자문사로 있었던 이헌재(62) 전 경제부총리 정도다. 검찰은 변씨 등이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갖도록 법률적 조언을 하는 등 막후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매각 로비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 스티븐 리(37.미국 체류 중)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는 데다 론스타 본사 경영진도 한국 수사에는 협조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어 로비 의혹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병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