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열린우리당이 먼저 고백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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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선자금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가관이다. SK 비자금 1백억원의 한나라당 유입 사실이 밝혀진 데 이어 민주당이 연일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의혹을 폭로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의 2000년 총선자금 문제로 맞받아치고 있다. 폭로전이 꼬리를 물면서 정치권 전체가 진흙탕 싸움에 들어간 양상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

대선 당시 盧후보 선거대책위 총무본부장이었던 이상수 의원과 열린우리당 측의 해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민주당 제주도지부 후원회 영수증을 李의원이 갖고 나간 것도 이상하다. 민주당을 탈당했으면 후원금 관련 서류도 민주당에 넘겨주는 게 마땅하다. 李의원이 무정액 영수증을 가져간 것이나, 영수증이 대선기간이 아닌 대선 후에 집중 발급된 것 등은 사후 짜맞추기를 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허위 회계처리와 자금세탁 의혹은 또 무엇인가.

李의원이 "민주당 회계의 결정적 문제를 알고 있다"며 총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전면수사를 촉구한 것도 궁색하다. 비리를 알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털어놓으면 된다.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성할 줄 아느냐'고 위협하는 뒷골목 세계를 보는 듯하다. 궁지에 몰리자 '여야 대선자금 특검'을 주장했던 한나라당보다 더 치사해 보인다. 그렇게 해서라도 입막음을 해야 할 비밀이 뭔지 궁금하다.

이런 공방이 계속되면서 열린우리당은 창당의 도덕적 명분마저 잃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盧후보 선대위의 대선자금이 선관위 신고액뿐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도 최소한의 자기고백조차 하지 않는다면 정상 참작이나 고백 후 사면이라는 '만델라식 해법'을 검토할 여지조차 없어질 것이다.

기존 정당을 비난하며 정치개혁의 명분을 내세워 새 정당을 만들었으면 그에 합당한 처신을 해야 한다. 행태는 기존 정당과 달라진 것 없이 말로만 정치개혁을 내세우면 누가 믿겠는가. 정말로 정치개혁을 자임했다면 다른 정당에 앞서 모든 불법자금에 대해 먼저 고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