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해 놓고도 미심쩍어 불안…|「강박증」겪는 주부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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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소한 부주의로 자칫 가사를 그르치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가슴을 졸이고 심지어 공포감마저 느끼는 「주부공포증」이 최근 수년 새 부쩍 늘고 있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현대화·공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증가하고 있는 이 신종 증후군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주변의 주부들에게서 많이 발견되고 있는 실정.
집안의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하고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또 외출이나 여행을 나설 때도 한참 길을 가다 보면 전기 불을 끄지나 않았을까, 다리미질하다 코드를 그대로 꽂아 두지는 않았을까 왠지 꺼림칙하다. 문을 잠그지 않아 도둑이 들까 봐 불안·초조·공포감에 휩싸인다.
남편과 맞벌이하는 가정주부 김 모씨(30·과천시 주공아파트)는 지난 여름휴가 때 남쪽으로 피서를 떠났다. 남편이 몰고 가는 차가 중부고속도로에 접어들었을 때 불현듯 집 걱정에 생각이 머물렀다. 가스꼭지를 틀어 놓고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김씨는 가스가 온 집안에 가득 찰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게 됐다.
김씨가 보인 증상은 정신의학적으로 「강박증」에 속한다.
서울대의대 조두영 교수(신경정신과)는『그같은 강박증은 교육수준이 높고 완벽을 추구하는 철저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많다』고 말했다. 또 종전에는 서양 쪽에 많았으나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
조교수는『예컨대 외출 때 실제로는 문을 잠그고 나왔는데도 자꾸 안 잠근 것으로 느껴져 걱정에 사로잡히고 생각만 하는 것은 「강박사고」라하며 집에 되돌아가 확인까지 하는 것은「강박증」(강박노이로제)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강박사고는 경쟁이 치열하고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나 강박증이 심하면 문제가 된다.
조교수는 『강박사고와 강박증은 복잡한 사회환경은 물론 2∼3세 때의 부모교육과 큰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프로이트 심리학에 나오는「항문기」때 부모가 대·소변을 빨리 제대로 가리지 않는다고 욕하거나 매를 때리는 등으로 윽박지르는 것이 성격형성에 영향을 준다.
이 경우 꼬마는 특히 엄마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시간 맞춰 대·소변을 보게 되는 등 철저한 성격으로 바뀐다는 것.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주부들의 강박증이 ▲전문직 등에 종사하는 사람을 비롯해 ▲학창시절에 모범생이었거나 성취의욕과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은 중산층 가정주부 등에게 많다고 지적했다.
조교수는 『강박증은 본인이 괴로워 가정과 사회생활에 힘들어하고 지장을 느낄 정도로 심하면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박증 환자들은 약물치료만으로 3분의 2가 효험을 보고 나머지는 정신치료까지 병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다지 심하지 않은 강박증의 경우엔 느긋한 마음으로 생활하려는 노력으로 해소할 수 있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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