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재산 침해에 제동|국세기본법 위헌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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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세의 공공성과 재산권 침해여부를 놓고 1년 이상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공방을 벌여온 국세 기본법 제35조 1항 3호의「1년 미만 된 전세권·질권·저당권 등 담보채권보다 국세를 우선 징수할 수 있도록」한 규정이 3일 위헌으로 결정됐다.
이번 결정은 조세 우선 징수의 폭을 보다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국가에 의한 무분별한 사유재산권 침해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는 국가의 국세징수우선권 못지 않게 사유재산권도 존중돼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무부와 국세청 등 정부측은『조세는 국가의 재정적 기초이며 고도의 공익성과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채권에 우선해 징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현실적으로 대다수기업이 많은 금융부채가 있고 기업재산의 대부분이 담보로 제공돼 있어 우선 징수권이 없어지면 실질적인 조세확보가 불가능해진다』며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결정을 유보해 주도록 요청했다.
정부측은 특히 이 조항은 49년 12월부터 현재까지 40여년간 시행돼 국민들간에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위헌 결정으로 거래의 안정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헌재는 그러나『이 조항처럼 담보물권이 합리적 사유 없이 담보기능을 수행치 못하면 이미 담보물권이 아니며 따라서 담보에 우선한 국세 우선 징수 조항은 재산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밖에『나중에 발생한 조세채권이 먼저 발생한 담보채권보다 우선한 결과 금융기관은 물론 일반시민들이 담보로 확보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재산권의 본질적 침해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현재 소송에 계류중인 사건은 국가 패소가 불가피하며 국세기본법 제35조 1항3호는 실효됐다.
그러나 여러 채권 가운데 조세채권 우선이라는 원칙은 변동이 없기 때문에 가등기담보·지방세·기타 공과금 등이 국세와 경합할 때는 비록 국세가 나중에 발생하더라도 국세를 먼저 징수할 수 있게 된다.
조규광 헌법재판소장과 한병채 재판관 등 2명은 이점에서 유독 전세권·질권·저당권 등 담보채권에 대해서만 국세 우선 원칙을 폐기한다면 다른 종류의 담보권자 및 다른 세법과의 사이에 불평등이 발생해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소수의견을 냈다.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국세체납으로 세무서 등으로부터 부동산이 압류돼있는 미 정리 체납액은 모두 4천5백70억여원으로 이둘 부동산중 대부분은 금융기관에 저당 등이 잡혀있는 실정.
이 때문에 세무당국으로서는 이번 위헌 결정에 따른 세수손실과 저당권 악용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 하는 숙제를 안게됐다. <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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