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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밝게 하는 사람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일자 여러 신문에 보도된 세가지의 미담기사는 점점 살벌해 가는 듯한 우리 사회에 그래도 선의의 마음씨들이 모여 각박한 세태를 압도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에서는 월 48만원의 박봉으로 살아가고 있는 하위직공무원 이호승씨가 매달 15만원을 떼어 학자금을 보태주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 폐결핵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돈이 없어 병원을 찾지 못하는 한자매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여러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서울 서대문구 주민들은 그 지역의 우수한 저소득층 자녀들의 학비를 보태주기 위해 안산장악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사회의 자발적 봉사활동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 스스로의 자각과 참여에 의한 봉사활동이야말로 지금까지 관주도로 전개되어온 온갖 국민운동이 결과한 관의존 성향,자율적 시민운동의 미성숙,심지어는 위로부터의 봉사운동에 대한 냉소주의를 탈피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확신한다.
우리 사회는 일제의 수치스러운 하향성 계몽운동을 거쳐 오랜 독재체제아래서 겪은 체험을 통해 무슨 캠페인하면 그 뒤에 가리워져 있는 정치적 의도부터 의심해왔다. 또 지난 20여년간의 성장 제일주의 시기를 겪으면서 이웃을 돌볼 겨를을 갖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자기와 가족 중심이고 조금 발전한 것이 고작 혈연ㆍ학연의 집단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편협한 이기주의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 갈등과 소외감을 극복할 수 없게 되었다. 나만이 잘 살고 내 집만이 아름답게 꾸며질 수만은 없도록 도시는 커지고 공해는 심화되고 집 안과 밖의 상관관계는 밀접해졌다.
다같이 남을 생각하고,남의 불행이 자신의 다복함과 거리가 멀어지면 질수록 그 결과는 자신의 다복함을 위협하고 파괴시키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나와야 할 단계에 우리는 와 있다.
길거리의 혼잡이나 세계 최고의 수치스런 기록을 내고 있는 교통사고,날로 흉포화하고 있는 범죄,청소련의 비뚤어진 습성들이 모두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와같은 사회현상을 바로잡는 일은 정치인이나 정부에만 책임을 돌리고 질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제는 6ㆍ25때 겪은 극한적 굶주림과 헐벗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이상 이웃을 돌볼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때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비교적 유복한 중산층이 앞장서 사회분위기를 좋게 바꾸는 일에 나서야겠다.
그런 수범을 앞서 지적한 개인과 단체들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봉사활동이 더욱 확산되어 사회정화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도 그런데서 참뜻을 찾게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곳보다 종교가 급성장하고 있다. 냉소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현상이 물질적 풍요 다음에 오는 정신적 가치의 추구가 아니라 치부과정에 대해 중산층이 느끼고 있는 죄의식을 씻으려는 이기적 동기의 발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달동네의 판자촌은 외면한 채 궁궐같은 종교집회장소가 무수하게 들어서게 되었다고도 한다.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런 이기주의에서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고,이웃을 돌아보고,이래서는 자신이 속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자각을 해야될 때가 되었다.
지난 몇년동안 우리 사회는 온통 민주화만 외쳐댔지만 민주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러나 따져보면 민주화란 권력이나 정부와는 독립된 시민의 역할이 다양화해지는 것이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자각을 행동화한 이호승씨의 행동,안산장학회 회원들,그리고 현정양 자매를 도와준 사람들의 마음씨 같은 것이 사회 각계각층에 번져나갈 때 우리 사회는 경쟁으로부터 더불어 사는 쪽으로 호전되고 서로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는 삭막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민의식의 성숙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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