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상생하는 우리의 미술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 기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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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얼마전 '오주석의 한국의 美(미) 특강'이란 책을 읽었다. 한국 미술을 감상하고 작품을 깊이 있게 해석하는 방법 등을 알기 쉽게 안내했다.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나는 그동안 군인이 행진하듯 미술 작품 앞을 쓰윽 지나가곤 했다. 한국화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감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조선시대 화가 단원 김홍도(1745~?)의 풍속화 '씨름'과 '무동'에 대한 설명을 읽고는 한국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물기를 조절해 선과 윤곽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호랑이의 털이나 노인의 주름 하나까지 세세하게 붓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니 그 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붓이 사라지고 있다. 사실 연필 한 자루면 될 것을 문방사우를 들고 다니는 일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붓을 드는 정신만은 잃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나서는 문방구에서 만나는 수많은 펜도 다르게 보였다. 수치화되고 정량화된 서양의 펜은 사용하는 이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굵기와 색을 조절할 수 있는 동양의 붓과는 얼마나 다른가. 치밀한 계획과 계량화한 재료로 짓는 서양의 건축물은 또 얼마나 인공적인가.

우리 선조들은 자연 재료를 이용해 건물을 지었다. S자 모양의 나무밖에 없으면 기둥은 S자일 수밖에 없었다. 색채도 마찬가지다. 나무 색깔 자체가 건물의 색이었다. 그러다 보니 건물은 자연의 일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모든 것이 서구화해 우리의 사고와 가치관도 서구화한 것 같다. 합리성을 이유로 자로 잰 듯한 규격에 갇힌 삶을 살면서 자연미와 여백의 미를 점차 잊게 된 것이다.

서구 문화와 서양 미술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우리 문화와 미술에는 자연과 상생하는 고차원의 가치가 있다. 그 아름다움을 향유하려면 먼저 우리 문화의 정신과 내용을 볼 줄 아는 안목부터 길러야겠다.

최원호 학생기자

(강원 민족사관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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