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허덕이는 자립高… 시범운영 관계자들 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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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정부의 규제를 받는 자립형 사립고는 평준화의 보완책으로 별 도움이 안된다."

2000년 교육부장관 재직 당시 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 계획을 세운 이돈희(李敦熙)민족사관고 교장은 28일 "학교에 이렇게 규제가 많은지 몰랐다"며 자립형 사립고라는 평준화 보완책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같은 자립형 사립고인 전주 상산고 홍성대(洪性大)이사장도 "(사립고 내막을 알면)운영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교육당국의 규제에 혀를 내둘렀다.

2002학년도부터 시범운영 중인 자립형 사립고 관계자들은 전날 윤덕홍(尹德弘)교육부총리의 '평준화 유지.2005년 이후 자립형 사립고 허용'발언에 대해 규제 철폐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과연 어떤 규제가 있길래 현 상태의 자립형 사립고가 평준화의 대안이 될 수 없을까.

자립형 사립고인 전주 상산고의 연간 소요예산 현황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올해 시범 운영 첫해를 맞는 이 학교의 법인부담금은 4억2천3백여만원이지만 내년엔 7억원, 2005학년도부터는 10억원이 된다.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로부터 걷는 등록금의 25%를 재단이 의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상주(李相周)부총리가 경기도 지역의 사학 관계자들을 만나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해줄 것을 여러차례 제안했는 데도 단 한 학교도 신청하지 않았다.

재정적인 규제뿐 아니다.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도 자립형 사립고는 국민공통기본과목 56단위만 이수하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교과과정을 운영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서울대 등 일부 대학의 경우 대학입시에서 56단위 이외에 1백30개 단위를 이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광양제철고 부은령 연구부장은 "자립형 사립고가 결국 대학입시를 위해 일반고교와 비슷한 교과과정을 운영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우수 교사 채용이나 우대 역시 일반고교에서 적용되는 교사자격증 소지자라는 제약과 일반 고교 교원과 동일 호봉의 봉급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에 얽매여 있다. 이 때문에 자립형 사립고들은 "학교 재정 및 교과과정 등에서 획기적인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2005년 자립형 사립고의 운영기간이 끝나면 운영 성과를 따져보고 규제철폐 등을 결정할 방침"이라며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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