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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원하는 시간에 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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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행정자치부에 근무하는 9급 공무원 A씨(33.여)는 요즘 걱정이 많다. 세 살배기 아이를 지금은 친정 어머니가 돌봐주지만 내년부터는 놀이방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무리 늦어도 오후 7시까지는 데리러 가야 하는데 정확히 퇴근해도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고 걱정했다.

국무조정실 B과장은 일주일에 두 번 야간대학원에 다닌다. 물론 부서장에게 허락 받았지만 매주 수업을 위해 빠져나오는 것이 왠지 미안하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공무원들이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하는 일반적인 근무 방식보다 짧게 근무하는 '시간제 근무제도'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중앙인사위원회 김명식 인사정책국장은 26일 "공무원 임용령을 고쳐 육아휴직 대상자만 가능하던 시간제 근무를 정무직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에게 확대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국.공립 학교 교사는 대상이 아니지만 교육부가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근무=시간제 근무를 신청하면 한 주에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점심시간 제외)의 범위에서 근무할 수 있다. 하루 세 시간만 근무하거나 격일, 특정 요일에만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근무일에는 최소 3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격주 또는 격월로 근무하는 것도 안 된다. 한 달 단위로 신청할 수 있고, 연장할 수도 있지만 누적 기간이 3년 지나면 더 이상 신청할 수 없다.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보수와 수당.연금도 줄어든다. 정상적인 봉급을 근무한 시간만큼의 비율로 나눠 받는다.

예를 들어 월급 200만원을 받던 공무원이 주 20시간만 근무하면 100만원만 받게 되는 식이다. 각 기관은 남는 인건비로 계약직 시간제 근무자를 채용할 수 있다. B과장과 같이 줄어드는 근무시간이 많지 않으면 부서 안에서 대체근무자를 지정해 수당을 더 주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고려대 문명재(행정학) 교수는 "근로시간과 인건비를 줄이고 다른 사람의 고용기회를 늘리는 잡 셰어링(job sharing)을 정부가 먼저 도입하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 정착될 수 있을까=제대로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지금도 육아휴직 대상자는 시간제로 근무할 수 있지만 신청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행자부 A씨는 "아이들을 맡겨야 하는 여성 공무원에게는 꼭 필요한 제도지만 이를 용인해 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업무 성격상 다른 사람과 나눠 할 수 없는 일을 맡고 있거나 소속 부서에 인력이 부족한 경우 기관장이 허가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교육부 공무원 최모(39.6급)씨는 "지금도 야근을 밥먹듯 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에게 시간제 근무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말했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사람이 하던 일을 둘이 나눠 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문 교수는 "시간이 남으면 다른 직업을 갖고 싶은 유인이 생길 수도 있는 만큼 제도 도입 초기에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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