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명품, 대중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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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의 오너 장 루이 뒤마 전 회장은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한 국내 인사를 만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명품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거 아닙니까." 그는 씩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허리에 매고 있던 에르메스 벨트를 풀면서 되물었다. "지금까지 벨트를 몇 개나 사셨습니까." 십여 개는 산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한 말. "제 벨트는 1960년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아직도 매고 다니지요. 이후 단 한 번도 벨트를 산 적이 없습니다. 어떤 게 더 경제적일까요."

◆ 활기 넘치는 명품시장=국내 명품시장이 활발하다. 에르메스는 다음달 8일 서울 강남 도산공원 앞에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를 연다. 6542㎡(1982평)에 10층으로 꾸며진다.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 LA 베벌리힐스, 뉴욕 매디슨애비뉴, 도쿄 긴자에 이은 세계 다섯 번째 에르메스 매장이다. 전형선 에르메스코리아 사장은 "그만큼 한국 명품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다. 10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는 '짝퉁'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에르메스는 3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390억원으로 예상된다. 루이뷔통.샤넬은 에르메스의 두 배는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페라가모.구찌.프라다.불가리.펜디 등 약 30개 브랜드를 합치면 명품 매출액은 5000억~6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패션.보석.잡화 3개 부문 명품의 시장규모는 약 1조5000억원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 상류층 전유물만은 아니다=국내에서는 여전히 명품을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올해 빈센트 앤 코의 가짜 명품사건은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다. 이 때문에 명품회사들은 선의의 피해를 본다고 울상이다. 한 명품회사 관계자는 "좋은 질을 유지하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든다"며 "상품가격에서 원가 비중이 50%나 된다"고 밝혔다. 명품은 품질이 뛰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예컨대 루이뷔통은 한 달간 무두질을 거친 천연가죽을 사용한다. 가죽 겉에는 보호막이 형성돼 오래 사용해도 변형되지 않고 우아한 형태를 유지한다. 작은 손지갑도 여덟 번의 품질검사를 거친다. 에르메스에 타조 가죽을 공급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업체는 최우수 가죽 공급을 위해 아예 에르메스 납품용 타조알부터 별도 관리한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양복감 소재인 울의 품질 유지를 위해 매년 '최고의 울' 공급자를 선정한다. 전형선 사장은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식혜와 업체에서 파는 식혜의 맛이 다르지 않은가"라며 "명품은 바로 어머니의 식혜"라고 비유했다. 이어 "굳이 상류층은 아니더라도 검소하게 살면서 좋은 제품 한두 개를 쓰는 사람들이 진정한 명품족"이라고 덧붙였다.

정선구.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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