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기사 이창호-파죽의 31연승 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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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창호 4단이 지난 2월27일부터 지금까지 국내 기전에서 31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기계의 내노라하는 강자들이 맞붙은 여러 기전의 본선대국이 대부분이었으니 가위 경이적이다.
이제 「조훈현의 끝이 어디일까」를 생각했던 1백여명의 전문기사들과 5백만 바둑 팬들은 「이창호의 끝이 어디까지일까」를 찾아 헤매야할 때가 되었다.
이 4단의 현재 활약상을 살펴보자.
왕위전 (중앙일보사 주최)에서 백성호 7단·양상국 6단·정수현 6단을 차례로 누르고 3승으로 단독 선두에 나서고 있다. 기성전 (세계 일보사 주최)에서는 4승으로 유창혁 3단과 공동선두, 기왕전 (조선일보사 주최)에서는 서봉수 9단과 3승으로 공동선두다.
명인전 (한국일보사 주최)에서는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해 황원준 6단과 결승 3번기를 하고 있는데 쾌조의 1승을 거두고 있다. 대왕전 (매일신문사 주최)에서는 도전자 결정 3번기에 유창혁 3단과 대결하게 되어있고 동양증권배에서는 서봉수 9단과 타이틀을 놓고 5번기를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
국수전 (동아일보사 주최)의 도전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승자 결승에 올라 서봉수 9단과 최규병 4단 중 어떤 사람이 이길지 지켜보고 있다.
최고위전 (부산일보사 주최)에서는 타이틀 보유자로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다.
국내외 바둑계에 「소년도인」 「사상 최강의 10대」로 불리는 이창호 4단은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
올해 39승2패 (조훈현 9단·양재호 6단에게 각 1패)를 기록하고 있는 이 4단은 연승 기록은 언젠가는 깨지겠지만 거의 모든 대국에서 이긴다고 보아야한다. 그렇게 되면 왕위전·기성전·기왕전·명인전·국수전·대왕전·최고위전 등의 기전에서 도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모두 다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기전에서 도전자 이창호가 탄생하게 된다.
올 가을부터 내년 초 사이에 「조무현-이창호 시대」가 화려하게 개막될 것이다. 지금까지 바둑 팬들을 사로잡았던 「조무현-서봉수 시대」는 어느덧 황혼을 맞았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이창호는 조무현의 제자다. 그것도 한 집에 있으면서 가르치고 배움을 받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그래서 이들의 대국을 「사제의 대결」이라고 했다.
올 가을부터 국내 여러 기전의 타이틀을 놓고 「사제의 대결」이 벌어지게 되었다.
제비처럼 날렵하게 발빠르고 재기 넘치는 바둑을 두는 세계정상의 조 9단.
바위처럼 묵직하게 어떠한 장벽도 무너뜨리는 힘의 이 4단.
그들은 이 가을부터 사제관계를 넘어 숙명의 라이벌이 되게 되었다.
이 4단이 언제까지나 연승가도를 달리게 될지, 그리하여 각종 기전의 도전자가 되어 스승 조 9단의 앞에 서게 될지를 바둑 팬들은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바둑 팬들은 내심 무척 든든할 것이다.
「세계의 조무현」을 이을,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소년 기사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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