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 경험이 회사 경영 밑거름됐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가파른 능선을 땀흘려 걷다보면 어느새 몸과 정신이 맑아지고 내 주변 세속사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산은 내게 명상의 무대입니다."

한때 부도 위기에 몰려 자살까지 생각했던 중소기업 CEO가 산행을 통해 재기했다. 그리고 그는 그 험난하다는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산에서의 명상을 담은 책도 펴냈다. 최근 수상집 '백두대간에서 산이 되리라'를 낸 박용기(58.사진) 파주인쇄정보산업단지 이사장(삼조인쇄 대표)이다.

박 이사장은 2002년 6월부터 2004년 8월까지 800㎞(지리산 천왕봉~강원도 인제 향로봉) 백두대간을 35구간으로 나눠 종주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원희룡 의원(한나라당) 등 지인들과 백두대간 2차 종주를 진행 중이다. 바쁜 기업인이라 주말의 야간산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2차 완주는 내후년 중반 쯤으로 계획하고 있다.

평범한 주말 산행객이었던 그가 산을 각별하게 대하게 된 것은 8년 전이다. 그가 운영하던 인쇄회사도 1998년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파도는 피할 수 없었다. 일감은 절반 이하로 줄고 치솟는 금리에 인쇄시설 리스비는 두배 이상으로 올라 꼼짝없이 망할 지경이었다. 못견딘 그는 산을 찾았다.

무작정 걷고 또 걷다가 어느 순간 대자연 속에 숨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회피할게 아니라 제대로 망해보자"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비웠다. 산을 내려온 그는 직원들 퇴직금과 빚부터 정리하겠다며 전 재산을 내놓고 '배수진(背水陣) 경영'에 나섰다. 이런 저런 고비를 넘기면서 회사는 살아날 수 있었다. 그후 그는 틈만 나면 산을 타면서 사업을 구상한다.

박 이사장은 "산행의 고통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케 한 백두대간은 내게 교만하지 말며 욕심을 버리라고 가르친다"며 "삶이 힘들거든 한번 백두대간을 오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백두대간 2차 종주가 끝나면 한국의 오지를 섭렵해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꿈을 가꾸고 있다.

이재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