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안 들러도 계속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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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관련 물질이나 무기를 실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북한 선박 한 척이 홍콩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첫 번째 북한 선박 검색이 이뤄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이 배는 공해상을 항해 중인데 홍콩으로 가고 있다는 게 미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안보리 대북 결의 1718호는 화생방 무기 관련 물질이나 장비.재래식 무기 등을 실은 선박이 북한을 드나들 경우 관련국들이 검색해 금지된 품목의 반입과 반출을 저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정대로 이 배가 홍콩에 입항하면 검색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홍콩 방문 시 홍콩 정부가 안보리 결의에 따른 조치를 시사했기 때문이다. 당시 홍콩 정부는 안보리 결의 이행을 확약한 중국 정부의 방침을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힐 차관보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검색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다. 북한은 자국 선박에 대한 강제 검색에 대해 물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천명한 상태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북한은 이 책임을 유엔이나 미국 탓으로 돌리며 국면 전환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검색에서 금지된 품목이 발견되지 않았을 경우는 특히 문제다. 이럴 경우 북한은 강제 검색을 항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 정보 당국은 무기 등 불법 품목이 선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고 있으나 구체적인 선적 사실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 배가 홍콩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입항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보 당국은 이 배가 제3국에 입항할 경우 무기 선적 증거를 잡히지 않기 위해 화물을 다른 나라 국적의 배에 신속하게 옮겨 실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2003년 5월 마약 밀매와 관련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포됐던 북한 선박 봉수호는 투발루 선적이었다. 2002년 12월 예멘에 스커드 미사일 15기를 싣고 가다 스페인 전함에 일시 억류됐던 서산호도 캄보디아 선적으로 확인됐다. 제3국 국적의 배에 화물을 실을 경우 감시가 소홀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확고하다. 미 국방부 관리들은 문제의 북한 배가 홍콩에 들르지 않는다 해도 그 후의 행선지를 계속 추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23일 "현재 북한을 떠나는 모든 배에 대해 철저한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 어느 항구에 들어가더라도 추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선박이 북한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든 검색이 이뤄질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홍콩.워싱턴=최형규.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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