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만들기] 37.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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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속도로가 등장했을 때 국민의 반응은 대단했다. 언론도 고속도로 개통으로 예상되는 변화를 앞다퉈 보도했다.

그러나 초기 고속버스 행정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고속버스터미널이 제각각이었다. 고속버스 운행업체마다 터미널 위치가 달랐으며 규모도 들쭉날쭉했다. 한진고속터미널은 중구 봉래동 서울역 앞에, 삼화고속의 경우 종로구 관철동에 각각 있었다. 대합실 면적이 20여평에 불과한 터미널도 있었고, 심지어 대합실을 갖추지 않은 터미널이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모두 들어서고 난 뒤인 1971년 1월 12일에야 '자동차정류장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터미널 설치 조건을 상당히 까다롭게 규정했다. 이 때문에 기존 서울시내 고속버스터미널 가운데 한 곳도 법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나는 도시계획국장이 되자마자 흩어져 있는 터미널들을 도심지역 내 한 곳에 모을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서울역 건너편 퇴계로변에 2천4백평의 빈터가 있었다. 중구 남대문로5가 84로 세브란스병원이 있던 자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들을 세브란스병원 자리.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봉래동 한진고속터미널 등 세곳으로 모아 통합 운영키로 잠정 결정했다.

고속버스터미널은 철도역과 가까워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따라서 서울역 인근에 터미널을 만들기로 했다. 서울역에 인접한 의주로2가 16은 일제 때부터 중앙도매시장이었다. 철도편으로 서울역까지 올라온 수산물.청과물 등이 이곳에서 거래됐다. 시장 규모는 6천여평이었다. 71년 중앙도매시장 내 수산물시장을 노량진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청과물시장은 75년 용산으로 이전했다.

71년 기획관리관이던 나는 양택식 시장에게 중앙도매시장 부지에 고속버스 종합터미널을 짓는 게 바람직하며, 이에 앞서 공원용지로 지정할 것을 건의했다. 梁시장은 이를 즉각 받아들였다. 하지만 고속버스 종합터미널 건립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고 중앙도매시장터는 지금의 의주로공원으로 바뀌었다.

74년 부임한 구자춘 시장은 도심 교통혼잡의 원인으로 ▶주차장 부족▶고속버스터미널 산재▶과다한 시내버스정류장 등 세 가지를 꼽았다. 具시장은 반포동 5만평 부지에 고속버스 종합터미널을 짓기로 하고, 그에게 다핵(多核)도시 조성을 제안한 국민대 김형만 교수에게 관련 용역을 의뢰했다. 서울시는 75년 6월 반포동 종합터미널(강남고속버스터미널)건립 계획을 발표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76년 9월 일부 시설이 준공됐다. 이와 함께 강북지역 주민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잠수교를 건설키로 했다. 이어 시는 남산3호터널 공사도 시작했다.

그러나 77년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개장과 함께 시내 곳곳에 있던 고속버스터미널들이 모두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고속버스 이용 시민은 큰 불편을 겪었다. 잠수교와 남산3호터널 공사는 끝나지 않았고, 강남터미널까지 다니는 시내버스는 적었다. 택시를 타기 위해 한두시간 기다리는 건 예사였다

그런데 강남터미널 계획과 지하철 2호선의 순환선 건설을 같은 사람들이 결정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강남터미널에 지하철 2호선이 연결돼야 했다. 그런데 고속터미널역은 강남터미널 개장 9년이 지난 85년 지하철 3호선 개통으로 신설됐다. 지하철 3호선이 한강을 건너 양재동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신사.잠원.고속터미널.남부터미널을 거쳐 도는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리=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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