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선거공식은 증세 정책=패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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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독일.일본.캐나다.스웨덴 같은 선진국 선거들에서 '증세 정책'은 대체로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나라들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금을 많이 거둬 복지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

18일 중앙일보와 숭실대 선거.정당연구센터(소장 강원택) 주최로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세금과 선거 특별 학술대회'에서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 등이 선진 6개국의 선거와 세금 관계를 분석했다. 이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증세 정책=선거 패배'란 공식이 대체로 적용됐다.

영국의 선거와 세금을 분석한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영국의 선거에서 세금 인상을 공약하고 승리한 정당은 없었다"며 "이 때문에 세금 문제에 관한 한 노동당과 보수당의 입장 차이를 유권자들은 느끼지 못하며 선거 쟁점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92년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보수당이 극적으로 승리했는데 이는 과거 노동당의 세금.지출과 관련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국은 불가피하면 직접세가 아닌 주세.유류세 등 간접세를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숨겨진 세금(stealth tax)'이란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미국도 사정이 비슷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세금 이슈가 선거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지 않았다"며 "득표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세금 이슈로 인한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전략을 주로 택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미국에서 선거가 있는 해에 조세 부담을 늘린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주지사 선거의 경우 조세 체제의 변화가 없었을 때 현 주지사의 재선 가능성이 컸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여당(자민당)이 증세 문제로 선거에서 곤욕을 치른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세헌 경북대 교수는 "일본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 약 10년에 걸쳐 정부와 여당에 의해 대형 간접세 도입이 추진됐다"며 "그때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패배를 당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79년 10월 총선, 87년 4월 지방선거, 88년 6월 후쿠시마 지사선거를 예로 들었다. 하 교수는 "정부와 여당은 결국 선거 참패로 대형 간접세 도입을 위한 추진 동력을 잃어버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세제 개혁과 같이 국민에게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책을 공론화하는 타이밍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독일에서도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김영태 목포대 교수는 "독일은 통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증대한 90년 이후 모든 정당이 감세 정책을 선거 이슈로 내세웠다"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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