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결속해 정면돌파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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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ㅌ.ㄷ 80주년'
횃불 든 북한 평양 주민들이 17일 밤 고 김일성 주석이 만주에서 일제 타도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해 조직했다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 80주년을 맞아 당창건기념탑(왼쪽 조각) 인근에서 횃불 대형으로 행진하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핵실험 9일 뒤 … 국가 행사 관람
미사일 위기 땐 39일 모습 감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핵실험 9일 뒤다. 조선중앙방송은 1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 결성 80돌에 즈음하여 조선인민군협주단의 경축공연을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을 보도한 것은 핵실험 이전인 6일 대대장 및 대대정치지도원대회 참가 이후 처음이다.

김 위원장이 비교적 빨리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2001년.38일), 러시아 방문(2002년.17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및 이라크 전쟁(2003년.48일), 미사일 발사(2006년.39일) 등 외부 세계와의 대립이 심화될 때마다 장기간 자취를 감췄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의 공개활동 조기 복귀는 핵실험으로 야기된 갈등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분석된다. 한국을 비롯, 국제사회의 만류를 뿌리치고 '레드 라인(넘지 말아야 할 선)'인 핵실험을 강행한 이상 사태를 관망하고 정책 구상을 다듬기보다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을 정면 승부로 압박하겠다는 의도라는 것.

또 유엔 안보리의 결의 채택으로 제재 강도가 높아질 것에 대비, 정상적인 공개활동을 통해 체제에 이상이 없음을 과시하고 주민 결속도 유도하려는 것일 수 있다. 중앙방송도 이날 '필승의 신념'을 통해 "고립 압살의 광풍이 세차게 불어와도 일심단결을 이룬 선군혁명 대오의 도도한 전진을 절대로 막지 못한다"며 결속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미 관계에서 극적인 돌파구가 열리지 않으면 북한은 2차 핵실험 등으로 위기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교통사고설이 나돌던 장성택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을 대동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정용수 기자

"단둥 - 신의주 국경 곧 폐쇄" 소문
시장 맛본 북한 주민 동요 조짐

18일 오전 북한 신의주 맞은편에 있는 중국 최대 국경도시 단둥(丹東)에 있는 화교 사업가 박모 사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박 사장이 북측 대방(상대방) 회사의 이모 과장에게 사준 휴대전화였다. 이 과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들었습네까. 신의주-단둥 세관 라인이 25일부터 폐쇄된답니다. 중국 정부가 그렇게 했다는데. 사실입네까"라고 물었다. 금시초문인 박 사장이 "무슨 얘기냐"고 묻자 이 과장은 "조선 쪽 세관엔 다 그렇게 소문이 났다"고 했다.

곧이어 신의주 세관에 있는 아는 북한 인사가 같은 내용의 전화를 해왔다. 내용은 조금 더 컸다. '신의주-단둥은 25일 폐쇄되지만 다른 국경 세관은 오늘(18일) 모두 폐쇄된다'는 것이었다. 이날 아침 그는 그런 북측 대방 전화를 세 통이나 받았다. 이런 소문은 이날 오후 낭설임이 판명됐다. 그러나 북쪽 국경지역은 불안감에 싸여 있다.

핵실험 성공으로 지도부는 '강성대국 건설의 길이 열렸다'고 하지만 시장경제의 맛을 본 북한 주민 사이에선 동요가 감지되고 있다. 단둥에서 북한과 수산물 거래 사업을 하는 중국동포 김모 사장도 비슷한 현상을 말하고 있다. 김 사장의 거래선인 북측 대방은 늘 청진에서 회령-싼허(三合)세관이나 남양-투먼(圖門)세관을 통해 중국으로 물건을 보냈다. 그런데 핵실험 뒤 갑자기 "중국 세관이 폐쇄돼 더 이상 그 세관으로 보낼 수 없다. 배로 보내겠다는 등의 말을 했다"며 "알아보니 중국 쪽 어느 세관도 폐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박 사장 등은 "이런 현상은 적어도 국경이나 평양의 대외 무역꾼들에게 퍼져 있는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중국의 움직임을 상부로부터 귀띔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성규 기자

◆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 동맹)= 김일성 주석이 1926년 10월 17일 만주의 화전에서 세웠다는 최초의 혁명적 청년조직. 북한은 김 주석이 일제 타도와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청년.학생조직을 만들어 혁명활동을 본격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ㅌ.ㄷ 동맹은 북한 표기에 따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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