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20조' KIC 투자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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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0억 달러(약 20조원)를 굴리게 될 '큰손' 한국투자공사(KIC)가 마침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다. 지난해 7월 설립된 지 1년4개월 만이다.

KIC는 최근 자금을 대신 굴려줄 자산운용사 두 곳을 선정했다. 영국계 바클레이스와 미국계 스테이트스트리트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등에서 받게 될 10억 달러가 1차 투자 자금이다.

KIC는 점차 투자 규모를 늘려 내년 하반기께엔 200억 달러를 모두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이 돈은 한은이 관리하는 외환보유액 170억 달러와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 30억 달러로 구성된다.

직접 투자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구안 옹 투자운용본부장(CIO)을 포함해 운용인력이 아직 20여 명에 불과한 데다 매매 시스템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계는 KIC의 첫걸음을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보고 있다. "기껏 내놓는 첫 작품이 간접 투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이 굴리고 있는 외환보유액을 받아 다시 자산운용사에 맡기는 형태여서 간판을 '한국투자중개공사'로 바꿔야 한다는 조롱 섞인 말도 듣는다. 특히 외환보유액의 운용 수수료를 이중으로 내는 셈이어서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금융계가 가장 걱정하는 대목은 KIC가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KIC로선 외환보유액이라는 돈의 성격상 안전하게 관리하면서도 한은보다 높은 수익을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한은이 선진국 국채 등에 투자해 올리는 수익은 연 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안전성'과 '고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은 자칫 KIC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한은은 6월 KIC와 위탁운용 계약을 하면서 부동산과 사모펀드 등에 투자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주식과 채권에만 투자할 수 있는데, 그마저 리스크가 큰 제3세계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관계자는 "돈의 성격상 보수적으로 투자 기준을 정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배구조의 효율성도 KIC가 풀어야 할 숙제다. KIC의 최종 의사결정기구는 민간위원 6인과 KIC 사장, 재정경제부 장관, 한은 총재 등 9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다. 비상근 민간위원이 과반수가 넘는 운영위원회가 투자 결정을 맡다 보니 속도가 떨어진다. 실제 투자 집행을 맡는 곳(사장 및 투자운용본부장 등)과 투자 결정을 하는 곳(운영위원회)이 달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도 있다.

정덕구(재경위)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회가 한국투자공사법을 난도질해 적잖은 문제가 있다"며 "공사의 지배구조와 자산운용상의 제약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KIC=외환보유액을 잘 굴려 보다 나은 수익을 올리는 것을 1차 목표로 2005년 설립된 정부출자기관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시아 금융허브 구축을 위해 초대형 국제금융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탄생했다. 해외 자산에만 투자할 수 있고, 일단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170억 달러와 재경부의 외국환평형기금 30억 달러를 합한 200억 달러를 투자 재원으로 삼는다. 성과가 좋으면 연기금의 투자를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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