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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만 전 기조실장 "盧 연정 제안으로 北核 해결 모멘텀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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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 북한 핵무장 통한 비대칭적 군사행위 부메랑 될 수도

■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 임명이 협상 국면 신호탄

■ PSI 참여는 군사제재하는 격… 협상국면 유도에 전력 다해야

참여정부의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서동만 상지대 교수가 북핵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 향후 협상국면의 도래를 신중하게 전망하면서 위기를 막기 위한 남북한 당국의 필사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1. "9.19 공동성명이 도출됐음에도 미국은 그 몇 달 전부터 금융제재로 이어지는 북한의 위조달러 문제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정책목표는 북한 정권의 붕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거죠."

2. "북한이 핵실험으로 가게 된 것은 중국이 안보리 제재에 동참하리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부터입니다. 분명 군사주의적 과잉대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덕적 측면에서 설득력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3.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면 PSI에는 참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PSI는 필요하다면 군사적 제재조치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서동만(50) 상지대 교수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핵실험 위기의 남북한, 미국의 3개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북한과의 '화해협력정책'을 일관성 있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소홀히 하고 이를 6자회담에만 맡겨둔 정책실패가 북한 핵실험 위기에 일조했다는 해석이다.

정부 내 정보평가 시스템 붕괴, 비공식 해외 정보 라인 실종도 그가 생각하는 노무현 정권의 치명적 구조 결함이다. 지난해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도출 후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도 쓸데없는 정력과 시간 낭비였다. 모멘텀의 상실이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이 북핵문제 해결의 기회를 상실하게 한 중대한 실수로 지적했다.

서 교수는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국제관계론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상지대 인문사회과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을 지냈고 2003년 국정원의 예산과 조직을 총괄하는 기조실장에 임명돼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남북한과 미국의 정책실패, 오판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먼저 우리 정부의 대응, 과연 무엇이 문제입니까?

"안이한 대처, 근거 없는 낙관주의, 관료주의적 대응이 문제라고 봅니다. 보고 라인과도 관련 있죠. 정보 평가라는 것은 '크로스 체크'가 돼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붕괴한 것입니다. 정책은 한쪽 방향으로 추진하다 보면 문제가 있는 부분도 될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상호 점검의 필요성이 중요합니다. 남북관계를 북.미 관계에 맡겨 버렸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드러납니다. 6자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관계가 종속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죠. 독자적인 남북관계의 추진이 없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북.미 관계에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진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6자회담의 9.19 합의에 무슨 오류가 있었던 것입니까?

"지난해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도출됐음에도 미국은 그 몇 달 전부터 금융제재로 이어지는 북한의 위조달러 문제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정책목표는 북한 정권의 붕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정책이 미 행정부 내에서 제대로 조율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냉정하게 직시하지 못하고 9.19 합의만으로 다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9.19 합의의 모멘텀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이 합의를 토대로 좀더 과감하게 대북정책을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노 대통령은 엉뚱하게 대연정론을 들고나옵니다. 북핵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사안인데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모멘텀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몇 달을 허송했습니다."

*** 해외 정보 시스템이 사라졌다

-정보 시스템의 붕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난 것입니까?

"외교부와 국정원의 정보 라인이 동시에 붕괴한 것이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DJ 정부 시절보다 훨씬 강화된 측면이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DJ 정부 시절에는 백악관을 직접 점검할 수 있는 정보 루트가 있었습니다. 외교부.국정원 등 공식 라인을 통하지 않고서도 말입니다. 김대중-임동원이라는 강력한 대북관계 리더십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이 같은 정보력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죠. DJ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부에는 다 이런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비공식 해외 정보 시스템이 사라졌어요."

-참여정부의 NSC가 정보와 정책 조정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은 일견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이종석 사무처장 휘하의 NSC에는 상당한 힘과 정보가 집중되지 않았습니까?

"NSC가 관료조직으로 변질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NSC가 대통령의 외교.국방철학을 수행하기보다 오히려 직업관료들의 생각과 정책이 관철되는 저수지가 돼버린 겁니다. NSC는 기존 관료들의 생각이 역류하는 또 하나의 관료기구로 변했습니다. 용산기지 이전 협상이나 전략적 유연성 협상에서 그런 폐단이 고스란히 노정됐습니다."

-북핵 실험은 미국의 정책실패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미국의 경우는 콜린 파월 장관의 회고록 내용이 정답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정책목표로 삼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외교적 수단으로 치장됐지만 사실은 북에 대한 압박정책으로 일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자회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상황을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해 가거나 북한을 압박하는 틀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미국 내에도 분명 온건파가 존재하지만 파월 장관과 켈리 차관보가 교체되면서 주도권은 강경파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우선적 관심은 북핵문제보다 한.미 동맹 재편 협상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북핵문제가 악화하는 것도, 진전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유지되는 편이 미국에는 유리하며, 이 역할은 6자회담으로 충족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고 미사일 실험발사를 해도 무시정책으로 대응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이 위폐문제를 조사하면서 동시에 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은 미국의 대북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합니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만일 결렬된다면 미국에 그 책임이 전가되는 상황이 조성됐기 때문에 미국 역시 어쩔 수 없이 합의한 측면이 강합니다. 성사 직전까지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던 가운데 극적으로 성사됐거든요. 그렇다면 그 흐름 속에서 뭔가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대비했어야 하는데 우리 정부가 지나친 낙관론으로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문제점으로 드러납니다."

-북한 역시 이런 사태가 오기까지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간 것은 그들의 안보 불안감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중대한 실책입니다. 북한이 세계 초대강국 미국에 느끼는 안보 불안은 외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죠.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만 남한에는 현재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 보유는 분명 비대칭적 과잉대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으로 가게 된 것은 중국이 안보리 제재에 동참하리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부터입니다. 어찌 됐든 핵우산에 대해 핵무기로 대응하는 것은 분명 군사주의적 과잉대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주장이 정당하다면 도덕적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의 행동에는 그것이 부족합니다."

*** 피폭국 일본의 양면성

-체제 보호를 위한 핵무기 개발이 오히려 자신의 체제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전화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북.미 관계를 평화적으로 중재하려고 했던 한국과 중국의 입지가 현격하게 줄어들었죠. 미국과 일본 내 극우 강경파의 입지는 공고해졌고요. 소위 적대적 공존관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핵실험 강행은 분명 과도한 군사 대응이고 위험한 도박입니다."

-오늘(10월15일) 새벽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됐습니다. 이 결의안의 특징을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일본의 강경론, 중국.러시아의 온건론이 절충된 성격으로 봐야겠지요. 미국 내에서도 강경 일변도로 갈 수 없다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한 측면도 반영된 결과입니다. 강온 양측의 이견이 큰 갈등을 빚지 않은 것도 미국 내 여론의 변화가 작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라크전과 북한 핵정책에서의 부시 행정부의 실패를 지적하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흐름입니다. 결의안 자체를 내는 것에 의미를 둔 흔적이 보입니다."

-일본의 강경대응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배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일본 정부가 극우 세력의 움직임을 현실정치에 활용하고 있다는 측면 외에 일본 국민여론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일본은 피폭국입니다. 핵에 대해 심한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향후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은 충분합니다만 핵무장 이전에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피폭국이었기 때문에 핵무장에 대한 국민의 거부반응이 상당하다는 것이죠.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평화운동 내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치가 대단했죠.

핵무장에 대한 거부감과 북한 핵에 대한 강경 여론이 대단히 미묘하게 결합돼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피폭 체험을 지나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 시민사회 반핵 여론의 한계입니다. 실제로는 자신들이 가해자였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는 행태죠. 이런 상황에서 북.미 간의 핵 갈등을 평화적으로 중재하는 쪽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강경론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피폭국의 경험이 보수 강경파의 토양으로 변질하는 셈이죠."

-북한의 핵 개발 역시 그런 관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피폭국가입니다. 히로시마(下關)와 나가사키(長崎)에서 수만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막힌 역설입니다. 우리도 피폭국가인데 동북아의 핵 확산을 한반도가 주도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저는 북한의 핵 개발을 부시 행정부의 정책실패의 귀결로 보는 입장입니다만, 북한 역시 군사주의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북한이 설혹 억울하다고 해도 끝까지 평화주의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폭국가로서의 도덕적 자기긍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 PSI 참여는 정책의 논리적 모순

-북한 핵실험 이후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우리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면 PSI에는 참여해서는 안 되죠. 미국 주도의 PSI는 필요하다면 군사적 제재조치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정책의 일관성이 깨지는 것이고, PSI 참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런 점에서 위험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최근 일부 정치인은 남한에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러시아.중국과의 관계상 한반도에 다시 핵을 들여놓을 수는 없어요. 한반도에 전술핵이 다시 들어오면 그것이 북한만 겨냥하게 됩니까? 미국과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합의한 상태에서 전술핵이 한반도에 존재한다는 것은 주변국에 엄청난 위협으로 간주되겠죠. 그런 주장을 감정적으로 하기 전에 먼저 객관적 주변 상황을 따져봐야 합니다."

-어쨌든 북한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상당한 고립과 궁핍을 감수해야 할지 모릅니다. 핵실험 이후 북한의 생존전략, 어떻게 예상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은 굉장한 고립상태에 처하게 됐습니다. 1993년보다 더 심한 고립이지요. 당시 중국은 북한의 NPT 탈퇴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유엔 안보리도 의장성명 발표에 그쳤습니다. 북한은 그래서 내심 주변국의 중재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는 북측이 자기논리를 가지고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저는 매우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사태가 협상 국면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중국의 중재 노력이 가장 두드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안보리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보여준 중국의 노력을 북한이 얼마나 평가할 것이냐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애초 우리 정부가 PSI 참여 문제를 놓고 혼선을 빚은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만일 PSI에 참여하게 되면 한국 정부의 중재 역할 가능성은 사라집니다. 한국과 중국 모두 대북 제재에 참여하는 정도에 반비례해서 중재의 역할 공간이 커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만 정부의 대처가 다소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한.미 동맹 재조정과 남북문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노무현 정부가 이 두 가지 문제 해결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부시 행정부가 가장 먼저 제안한 이슈는 북핵문제가 아니라 한.미 동맹 재조정 문제였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전략은 남북관계, 북.미 관계를 묶어두고 한.미 동맹 재조정 작업에 주력한다는 데 있었지요.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는 한 북.미 관계의 대치상태 하에서 남북관계 진전은 일정한 선을 넘기 어렵고, 한.미 동맹 재편 협상에서 주도권은 미국이 쥐게 돼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북한의 군사위협이 증대하는 듯한 상황에서는 한국이 대북 억지력으로 주한미군의 존재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남북관계 개선은 6자회담에 맡겨두고 한.미 동맹 재편에 주력했어요. 이는 미국이 의도하는 전략구도에 따라 깔아놓은 협상판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정책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평화번영정책을 내걸었지만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에는 소홀했다는 것이죠. 남북 화해협력관계 발전은 한.미 동맹 재조정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거꾸로 됐습니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지렛대로 삼았고 우리는 미국에 매달리는 상황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NSC도 대북문제보다 전적으로 한.미 동맹 재편에 매달렸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 기지 이전, 주권의 문제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문제를 '주권의 문제'로 포장해 국민에게 홍보한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용산기지 협상은 노태우 정부 당시부터 서울 한복판에 외국군 사령부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주권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의 요구'라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정부 출범 후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필요라는 성격이 전면에 드러났지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요구라는 '허구의 주권문제'를 내세워 이전비용을 한국 측이 압도적으로 부담하는 결과가 됐어요. 용산기지 이전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철저히 은폐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기지 이전 문제를 서두를 것이 아니라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먼저 협상했어야 합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미 동맹 재편을 병행 추진하지 못한 점, 기지 이전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거꾸로 처리한 점, 이것들을 노무현 정권의 커다란 실패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기지 이전, 미.일 동맹 재편 과정에서 얄밉도록 실속을 챙긴 일본의 경우와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것이지요."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큼이나 북한의 핵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과정으로 보입니다.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은 어떤 방식으로 그릴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 관련국가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북한은 성명을 통해 한반도 내에서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체제 안정이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없다고 천명했습니다. 북한 나름의 평화를 위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북이 '비핵지대화'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축, 다시 말해 미국 핵우산의 철거까지는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반도비핵화선언 때 북이 양보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북이 군축회담을 들고나올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막상 협상에 들어가서는 장기적이고도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협상을 위해 내건 조건은 매우 간단합니다. 미.북 양자회담, 그리고 위폐문제의 해결입니다. 위폐문제는 증거를 확실하게 제시하고 무엇을 시정하라는 것인지를 밝히라는 것입니다."

- 북한 핵 관련, 향후 어떤 수순이 기다리고 있는지 예측해 주시죠.

"조만간 부시는 두 번째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에 따른 위기 속에 당시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은 북한문제의 일괄해결안을 담은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양자협상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되 여의치 않으면 중국이 포함된 북.중.미 3개국 협상장을 마련해 미국의 체면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그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용이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하나는 그 과정에서 보여줘야 할 남북한의 노력입니다. 그야말로 필사적 노력이 필요한데요. 당국 간 채널을 복원하는 문제도 있고 '6.15공동위원회' 같은 민간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난해 행사 때처럼 6.15공동위원회에 당국 간 대표를 참석시켜 민간과 당국을 결합하는 노력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도 그러나 오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핵실험에 대한 남한 내, 세계적 여론이 극단적으로 악화돼 있으니까요. 어쨌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 임명을 계기로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으로 전망합니다."

*** 노무현 자주국방론은 피해의식의 소산

-이번에 안보리 제재안에는 해상봉쇄 같은 강경책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돌발변수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미국이나 일본이 독자적으로 해상검문을 취할 가능성이 없지 않죠. 이런 돌발 변수를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노력해야 하고, 또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한국 정부의 위상이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내에서의 한국의 경제, 군사적 위상은 굉장히 커져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가치는 막대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한.미 동맹 재조정 과정에서도 우리의 이런 국제적 위상을 한껏 활용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돌발 변수의 출현은 자칫 전쟁으로 가는 길이 되므로 외교역량을 동원해 그 가능성을 막아야겠지요."

-반기문 장관이 아주 미묘한 시점에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습니다. 반기문 카드가 미국의 국제전략, 특히 대북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전략과 함수관계가 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반 장관의 사무총장 선출은 그것 자체로 대단한 일입니다. 불필요하게 복선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반 장관은 지난 1년간 선거를 의식해 제대로 장관직을 수행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 1년은 반 장관이 진 빚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빚을 갚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코스모폴리탄으로 봐야겠지만, 그래도 민족을 위해 봉사할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우려도 없지 않죠. 반 장관의 사무총장 선출로 향후 유엔 대 북한의 대립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슬기롭게 대처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반 장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잘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유엔군사령부 문제가 있습니다. 냉전시대의 유물이지요. 그리고 일본에도 '유엔사'가 있습니다.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이 이 유엔사를 통해 그 초보적 기능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엔사 문제를 한반도 평화에 유익하게 해결하는 것도 반기문 사무총장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냉전적 구도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기문 사무총장 선출과 미국의 의도를 연계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군요?

"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편입니다. 한국의 경제.외교적 역량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 '자주국방론'을 피해의식의 소산으로 규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내에서 주한미군의 위치는 강화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미국 내에는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 평화 내지 통일 이후 한반도는 중국과 이해를 같이하는 지역이 될 것을 우려하는 견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중국위협론'에 따라 미.일 동맹이 강화되는 추세에 있지만, 마찬가지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질수록 한국의 전략적 위치도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미.일 대 중국 사이에 끼어 그 갈등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노 대통령은 동북아균형자론을 꺼내든 바 있지만, 상황은 반드시 위기로 볼 것이 아닙니다. 이 논리는 표현만으로 보면 상당히 대담한 발상이지만, 오히려 그 이면에는 현재 국제정세를 개화기로 환치하는 역사적 피해의식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지요."

-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에 허점이 있었다는 지적이시군요?

"경제적으로 세계 11위 규모인 한국경제는 IMF 금융개방 이후 월가 동아시아 금융시장의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안보는 미군이 아니라 미국의 월가가 지킨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죠. 그것은 역설이 아니라 이미 현실입니다. 장기적으로 미 공화당 정부는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결합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형의 한.미.일 3각 군사동맹으로 확대할 의도가 있습니다. 동북아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독자적 위치나 비중을 한국 정부가 제대로 평가하고 소중히 지켜나가는 것이 절실한 과제입니다. 자주국방을 외치기 전에 노무현 정권은 한국의 가치를 외쳤어야 합니다."

-여전히 폐쇄적인 북한 정권 담당자들의 세계인식이 핵폭탄보다 더 두려운 대목입니다.

"북한은 지난 7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한의 대중이 북한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북한 당국에는 안 된 말이지만 자기 인민들도 먹여 살리기 힘든 북한 체제의 현실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부담 내지 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핵실험 시도가 거꾸로 자신의 안보 불안으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기홍 월간중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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