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비 20년간 제자리 걸음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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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비가 20년째 제자리다. 각 대학 중 과외비를 가장 많이 받는 서울대 재학생을 기준으로, 평균 금액은 월 30만 원이다. 다른 학교들은 그나마 그 금액을 밑도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인터넷 과외 중개 사이트에 올라온 서울대생 조건 열람표. 과외비를 21~30만원으로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물가는 두 배 반이 뛰었고 땅값은 무려 다섯 배나 뛰었다. 한 서울대생은 "자장면 값만 하더라도 꼭 세 배가 뛰었다"며 자조적으로 말한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20년 전에도 서울대생 과외비는 30만 원이었는데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구로구 개봉동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김희수(43.가명) 씨의 말이다.

서울대생들은 과외비 제자리걸음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학생들은 서울대 생활정보게시판(www.snulife.com)에서 같은 주제로 수년간 격론을 벌이고 있으며 대부분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 원리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 수능 응시생들이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당장 5년 전 80만 명에 달하던 응시생이 최근 들어서는 50만 명 안팎으로 줄었다. 전체 고등학생의 수도 85년 200만 명에서 현재 170만 명으로 줄었다. 출산율 저하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더 큰 원인은 공급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1980년대 후반 과외 합법화 이후 많은 대학생이 과외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과외 시장에 대학생들이 많아진 것은, 대학생들의 숫자가 늘어서라기보다는 과외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너도나도 과외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아로'라는 ID를 쓰는 한 재학생은 요즘 서울대생의 생각을 이렇게 전한다. "2000년 이전에는 서울대 문과의 등록금이 100만 원이 안돼 큰 부담이 안됐기 때문에, 돈 많은 집 학생들은 과외를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없는 집에서는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또 여유가 있는 집 학생들은 용돈을 더 쓰려고 과외를 구하고 있다."

취업난도 공급 과잉 현상을 부추기는데 한몫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평균 대학 재학 기간이 길어지고 대학원 진학생도 늘고 있다. 이들 모두가 과외 시장의 열정적인 공급자들이다.

과외 공급자 간 차별화도 대학생 과외비가 여전히 낮은 이유를 설명하는 한 가지 요인이다. 대형 전문 입시학원들은 점수 관리는 물론,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회의를 하고 강의안을 바꾸며, 교재를 다시 만든다. 학부모 입시설명회 개최도 일상적이 돼 가고 있다. 대학생과는 투자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한 서울대생은 이를 두고 '대형 할인점 생기자 동네 슈퍼마켓 망하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온라인입시전문사이트 '이투스' 강사 출신인 입시전문가 조남호(29)씨는 "전문적인 교육서비스를 인터넷으로 싼 값에 제공받을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다"며 인터넷이 개인과외시장에 대체재를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원리와는 거리가 먼 특이한 요인을 꼽는 서울대생도 있었다. 요즘 젊고 똑똑한 대졸 학부모들은 서울대생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것이다. "소위 386 세대 아줌마들은 대학생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엄마도 네 살 어린 동생의 과외를 내게 맡기지 않는다. 대신 동생을 대치동의 유명 학원까지 데려다 주고 오는 심부름만 맡긴다."(ID: aurore)

서울대생들이 20년 동안 과외비가 오르지 않은 시장 상황에 개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도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시간당 3000~4000 원짜리 아르바이트도 못 구하는 대학생들도 있는데, 그래도 30만 원대 과외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서울대생은 오히려 '20대 특권층'이라는 주장이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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