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애 고교생의 자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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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행짜리 짧은 사회면 기사가 우리에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함께 일게 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경미한 정신이상증세를 보였던 공고 2년생 장군은 급우들이 그를 『싸이코』라고 놀려대는 비웃음을 이기지 못해 10일 농약을 마시고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더이상 급우들의 놀림을 견딜 수 없다』고 적고 있었다.
무엇이 이 젊은 학생을 죽음으로 몰았는가. 그를 둘러싼 주변의 냉대와 멸시때문이다. 영원한 우정으로 맺어져야 할 고교시절의 교실에서까지 한반 급우의 불행과 어려움에 대해 이처럼 멸시와 비웃음이 가득찼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타인의 불행에 대해 눈감아 버리고 냉대와 조소로 일관하는 풍조가 한 학교의 한 교실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가득차 있는 승자 제일주의 풍조이기 때문에 우리는 분노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해마다 장애자의 날을 기념하고 장애자올림픽마저 개최했으며 장애인 복지법과 장애자 고용촉진법이 마련된 오늘이지만,아직도 수백만에 이르는 장애인들은 이웃과 사회의 편견과 냉대를 이기지 못해 실의와 좌절의 늪을 헤매고 있다. 육체적 부자유와 경제적 빈곤보다 더 장애인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게 사회의 편견과 냉대인 것이다.
아무리 제도와 정책이 이들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된다고 해도 장애자에 대한 이웃과 사회의 편견이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한 장애자들의 지위는 개선될 수가 없다.
무턱대고 이들에게 동정의 눈길과 시혜의 손길을 펴자는 게 아니다. 이들에게 편견과 냉대의 시선을 거두고 정상인으로서 그들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장애자 대부분이,하루에 35명이 숨지고 8백여명이 다치는 교통사고 제1위의 우리나라에서 생겨나는 불의의 사고때문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불행과 사고의 가능성은 있다. 타인의 사고와 불행에 대해 자신의 불행과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대가 이웃과 마을과 사회로 확산되어야 한다.
물론 수많은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불구의 의지와 노력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창출해 나간 인간승리의 사례를 우리는 보고 있다.
험난한 대만 옥산정상에 세계최초로 오른 장애인 여성 등반가 강영순씨,최근 총무처가 실시한 9급행정직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한 36명의 지체부자유 장애인과 2명의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빛나는 영광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이웃과 사회가 해야할 일은 이들 장애인들의 외로운 투쟁과 불굴의 의지를 지켜보는데 있지 않다. 우리의 동료,우리의 이웃중에서 불행한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보람을 심어주는 격려와 성원을 보내야 한다. 남의 아픔과 불행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서 좌절과 실의를 딛고 일어서게끔 따뜻한 손길과 따스한 마음으로 이들을 성원하고 격려하는 이웃이 되고 사회가 되어야 한다.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임을 우리 모두가 가슴으로 받아 들일 때,이 사회의 아픔과 불행은 조금씩 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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