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고교 교사 상당수가 국교 중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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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나는 교육받은 국민을 바라지 않소. 나는 무식한 소를 원하오.』
니카라과 대통령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1세가 코스타리카를 방문,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막대한 정부 재정을 투입한 학교 건립 사업을 자랑하자 퉁명스럽게 내뱉은 대답이었다.
물론 소모사 1세가 이 같은 어록(?)을 남긴 후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오늘의 라틴 아메리카 교육 현실을 들여다보면 최근 20여년 동안 많은 지식인들이 교육에 대한 나름의 새로운 관심과 열정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도자들의 교육관과 정책 기조는 아직도 우민화 지향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우선 정책과 시설·교사 처우·교육 내용 등이 한마디로 여전히 한심스런 실정이다.
교육은 기초 과학·근로자 윤리·기업 의욕·정치-사회 환경 등과 함께 경제 개발 및 성장의 중요한 주변 변수라는 점에서 대다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국민 교육 낙후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라틴 아메리카 교육의 모든 문제는 일차적으로 정부 당국의 무관심한 교육 정책으로부터 비롯된다.

<정부서도 무관심>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중남미 대륙을 휩쓴 군사 정권들은 공립 학교의 사립화를 추진, 특히 초·중등 교육의 퇴보내지는 황폐화를 가져왔다.
파울로 프레이레 브라질 상파울루시 교육감은『공립 학교의 사립화를 추진한 군사 정권은 공립 학교에 전혀 무관심했고 따라서 공립 학교 체계가 완전 파괴 돼 버렸다』면서 군사 정권의 교육 정책에 거듭 호된 비판을 가했다.
그는『단적인 예로 내가 1년 전·교육감에 취임했을 당시 6백56개 상파울루시 공립 학교 중 절반 이상인 3백90개가 교실에 물이 새 학생들의 머리를 적시고 심한 곳은 교사가 무너져 가는 폐허의 상태였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주었다.
『이런 시설과 교육 환경에서 무슨 비판적·민주적 학교 교육을 상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프레이레 교육감은 이 같은 장탄식에 이어 연방 정부의 교육 예산에 대해서도 아주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우선 세출 부분 최하위 권에 맴도는 연방 정부의 교육 예산마저 대부분(3분의 2이상)이 대학 교육 지원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콜르르 정부의 신임 문교 장관이 앞으로 초·중등 교육에 교육 정책의 역점을 두겠다고 발표하자 대학 총장들이 모임을 갖고 우려를 표명한데 대해『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만약 내가 대학 총장이라면 그 같은 정책에 손바닥이 부어 터지도록 박수를 쳐대겠다.
보통 교육에 주력하겠다는 정책을 적극 지지하면서 대학 교육 지원 예산의 축소나 삭감이 없도록 해달라면 될텐데….』
라틴 아메리카 학교 교육 제도는 대체로 국교 5년, 중·고교 6년, 대학 4년(6년)으로 돼 있고 국민학교가 의무 교육이다.
칠레의 경우는 국민학교가 8년이고 중·고교는 4∼6년제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현재 국민학교 취학률은 80∼90%, 중학교는 45%다. 각각 1백%, 96.5%인 우리나라의 초·중교 취학률에 비하면 특히 중학교 취학률은 절반도 안되는 저조한 실정이다.
취학률도 문제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공립 학교 교육에 가장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는「전문 교사의 부재」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실제로 학교 교사로만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랑스런 직업이라는 긍지를 갖고 근무하는「전문직 교사」라는 게 거의 없는 현실이다.
물론 가톨릭 교회 재단 등을 중심한 사립 학교의 경우는 예외다.
우선 교사의 질부터가 사범계 대학이라는 교사 전문 양성 기관이 별로 없고 초등 교사의 경우 고교 3년 졸업 후 1년만 더 교사 양성 교육 과정을 거치면 교사 자격을 부여하는데 이 같은 양성 과정을 제대로 거친 사람조차 드물고 초등 교사의 대부분이 겨우 읽기와 쓰기를 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우수 교사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 유인 체계인 교사의 처우 문제도 말이 아니다.
초·중등 교사의 월급이 대체로 법정 최저 임금인 50∼70달러 선인데 현실적으로는 이 정도의 보수에도 훨씬 못 미치는 20달러(한화 1만4천원)정도를 받는 예가 허다하다.
이는 각 주 정부의 재정 능력에 따라 공립 학교 교사들의 월급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립학교 교사들은 거의가 3중의 직장(교사+점심·저녁때의 파트 타임 근무+강사)을 뛰어 가지고 생계를 유지한다.
주립 고교 교사 3년과 사립 고교 교사 l년의 경력을 갖고 현재는 상파울루 가톨릭대에서 방송기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니비아 크리스티나 반데이라양(33)은『상당수의 공립 학교 교사들이 이과수 자유 무역 지대 등에서 흘러들어 오는 외제 물건들을 보따리에 싸가지고 와서 동료 교사들이나 인근 주민들에게 팔기도 한다』면서 주립 고교 교사로 재직 할 때 1백30크루도자(20달러)의 월급을 받았다고 했다.

<봉급 20불 교사도>
그는 이어『빈민촌 국민학교는 대다수 학생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 보다는 학교 급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취학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 놨다.
그나마 브라질의 북동부 농촌 지역이나 아마존 지역 등에는 최소한의 교육 제도인 국민 학교 마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프레이레 교육감은 자신이 취임했을 당시 75달러였던 월급을 현재 1백50달러까지 끌어올려 놓았지만『이 정도의 보수로도 아직 우수한 인재들을 전문직 교사로 확보하기에는 요원하다』고 했다.
교직자 처우 문제는 대학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의 경우 국·공립 대학 교수 봉급이 월2백∼4백달러선인데 석·박사 학위를 갖지 못한 교수는 평균 2백달러다.
이 정도인 브라질의 대학교수 월급이 그래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꼽혀 아르헨티나·칠레·페루 등에서 교수 희망자들이 브라질로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교수들의 박봉문제는 지난해 월급 인상 요구로 8개월 동안이나「파업」을 했던 국립 브라질리아대의 예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월 4백달러의 월급으론 교수 아파트 월세를 내고 나면 2백달러 정도 밖에 안남아 생활비·연구비(책값)등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페루 등에서는 대학 교수 월급이 1백(2백달러 밖에 안돼 대부분의 경우 명예직, 또는 아르바이트식 부업 출장을 하고 연구소 직원이나 기업체 임직원직을 본직으로 갖고 있다.

<교수 지망 한명 없어>
법령상으론 고교 3년후 1년과정만 더 거친 교사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만 맡고, 국민학교 5학년부터 중·고교까지를 맡는 초·중등 교사는 대학 졸업자에게만 자격이 주어지고 공립 학교 교사 임용에는「임용고사」를 거쳐야 하지만 사실상 우수한 인재들은 공립 학교 교사직을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초·중등 교사는 물론 대학 교수까지도 아주 인기가 없는 직종이다.
87년 브라질의 수도에 있는 국립 브라질리아대가 교수 공개 모집을 했을 때 지망자가 한명도 없는「봉변」을 당했는데 이 같은 예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결코「이변」이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교육을 그래도 떠 받쳐 주고 있는 하나의 가느다란 기둥은 사립 학교들이다.
비싼 수업료 때문에 소수 부유층의 자녀들만 다닐 수 있는 사립 학교는 시설·교육과정·교사의 질이 나름대로는 확보 돼 있고 오전에 자국어로 교육한 각 과목의 교육 과정들을 오후에 영어·불어·독어 등으로 다시 반복, 대단한 외국어 실력까지 길러준다.
대학 교육도 백인 부유층 자녀들은 예외 없이 사립 대학을 다니거나 외국 유학이다.
어쨌든 라틴 아메리카의 교육 현실은 중미의 코스타리카 정도를 제외하고는 국·공립 학교 특히 국민 교육의 기본이 되는 초등 교육의 경우「부재」에 가까운 지경이다.
초등 교육은 읽기와 덧셈 정도의 국어·산수 공부가 거의 전부고 미술·음악 같은 예능과목은 아예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브라질 한 여론 조사 기관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교 교사의 11%가 국민학교 중퇴자 ▲전 국민중 중졸 이상이 20% ▲학교 시설중 75%가 사용 불능의 상태라는 것이다.
문맹률도 1950년 50%에서 또 86년 25%로까지 떨어졌다가 88년에는 27%로 높아지는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동북부 지방의 가난한 지역 학교 교사들은 고작 월 6달러의 봉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 어린이 10명 중 2명이 국교 1학년 과정을 반복해야 할 정도고 10명중 3명만이 초등 교육을 마친다.
뜻 있는 현지 교육 관계자들은『교육받은 소수가 지배하는 정부를 비호하기 위해 이 같은 한심한 교육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교육에 관한 모든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정치에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부유층 자녀들은 사립 학교나 외국 유학 등을 통해 충분한 고등 교육을 받아 예의도 바르고 구미인에 못지 않을 만큼 지적이기도 하다.

<30%만 국교졸업>
그러나 절대 다수의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접근하고 마는 초등 교육의 현실은 겨우 자기 이름이나 쓰고, 둘 더하기 셋 정도의 간단한 산수와 저급 만화를 읽을 수 있는 문자 해독 및 사고력을 기르는 수준에 그칠 뿐이며 매년 축구 황제 펠레가 유일한 선망인 수백만명의 반문맹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의 라틴 아메리카의 불의한 사회 경제적 구조는 바로 이 같은 교육에 의해 형성 됐다고 볼 수도 있다.
민중이 교육받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는 한 그들이 민주 정치에 참여할 소망이나 희망을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어두운 교육 현실을 비추어 주는 희망의 불빛이 전혀 없는 것만도 아니다.
멕시코 시에서 빈민가 교육에 투신하고 있는 예수회 소속의 한 신부는『라틴 아메리카 특권층의 기초가 되는 여러 가치와 구조는 가톨릭계 학교 속에서 보장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 예수회는 상류층을 위해 설립한 모든 학교들을 폐쇄하고 빈민 교육에 새롭게 투신함으로써 태만의 죄과를 씻을 도덕적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글 이은윤 특집부장 문일현 기자 사진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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