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방치된 변두리 문화 사각지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연소자 입장불가」에 청소년 들끓어
요즘 서울시내 일부 변두리극장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심스런 정경은 우리 청소년문화의 비뚤어진 모습과 병인의 단면을 실감케 한다.
신문광고나 영화계 뉴스에는 물론 전혀 언급되지도 않고 도심지 개봉관에서 상영된 적도 없는 저질 국산영화들이 버젓이 상영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어른들조차 낯뜨거울 만큼 노골적인 정사장면이 계속되는 포르노에 가까운 영화들이다.
매표구 옆에는 엄연히 「연소자 입장불가」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있으나 장내를 꽉메운 관람객은 거의 모두가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10대들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영화가 상영중인 어두운 객석에서 이들 10대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로 해서 스크린이 뿌옇게 될 정도이지만 어느 누가 이들을 제지하는 일도 없다.
대개 수백여명이 넘는 관람객이 좌석은 물론 옆과 뒤의 통로까지 메우고 있는 극장안에 임석경찰관 한명 보이질 않는 게 예사다.
이 음침하고 역겨운 분위기가 어찌 몇몇 극장에 국한된 것이겠는가. 태양이 해맑은 대낮에 이 음산하고 칙칙한 어둠속에서 음란한 백일몽에 탐닉하는 10대 청소년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도시 변두리에 있는 크고 작은 수많은 영화관이나 비디오극장,또는 만화가게중 이런 현상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곳은 하나 둘이 아니다. 부모들조차 무관심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이에 밝고 건강해야 할 청소년의 정서가 이런 곳에서 그늘지고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청소년 범죄가 흉포화해지고 특히 성폭행 범죄가 급증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접하는 각종 매체나 환경을 통한 성적인 자극과 충동이란 분석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특히 도시 변두리지역은 여론의 사각지대로 행정당국의 단속조차 느슨하거나 아예 전무한 상태여서 청소년들에게 퇴폐와 타락의 온상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이 점에서 당국의 대책은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예컨대 청소년의 극장출입을 단속한다 하면 도심의 개봉관을 중심으로 했던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변두리극장까지 단속을 확대해야 한다.
극장뿐만 아니라 모든 퇴폐와 타락의 작태가 도심이나 이른바 부촌에 못지않게 변두리지역에 만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대한 시정이나 단속은 지금까지 소홀히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변두리에 있는 유흥장이나 위락업소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위해환경의 정화에도 손을 써야 한다.
우리는 흔히 중산층을 중심으로 시책을 추진하고 중산층의 육성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목표인 양 생각하고 있다.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가 주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편향성이다. 그러나 국민이란 개념은 소득과 생활을 위주로 어느 특정계층에만 더 큰 비중이 주어져선 안된다. 도시 변두리 서민들이 사는 지역이라고 해서 유흥장과 위락업소가 제멋대로 퇴폐적인 상태로 방치돼서는 안된다.
극장에서 형편없이 저질스런 음란물이 청소년을 상대로 상영되어도 변두리니까,그래서 사회지도층의 눈에 띄지 않으니까 상관없다는 식으로 사각지대화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그곳을 찾는 청소년 또한 우리가 보호하고 선도해야 할 우리의 2세요 우리 장래를 이끌어 갈 미래의 주인공들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학교는 입학시험 위주의 기억력 축적장이 돼 버렸고 가정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휩쓸려 가정교육적 기능이 상실된 지 오래다. 이런 현실에서 사회가 갖는 정서적ㆍ교양적 교육의 책임과 역할은 매우 크다.
사회교육이란 결국 기성인들이 이루는 문화와 기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과 같은 타락하고 문란한 사회에서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들이 습득해야 할 건실한 사회교육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 것인가를 성인사회는 절실한 문제로 고민하고 해답을 내놔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의 압박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몰래 찾는 구석진 저질문화의 장소가 이런 식으로 지도의 책임이 있는 행정관서는 물론 일반 사회인으로부터도 외면되고 방관된다면 음습한 곳에서 독버섯이 나듯 청소년의 불결한 생활습성이 모르는 사이에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대중문화의 뒤안길에 밝은 햇빛을 조명하고 거기에 기생하는 독버섯을 제거함으로써 우리의 2세들을 보호해야 된다.
「연소자 입장불가」의 팻말을 버젓이 붙여놓고 청소년들을 입장시켜도 아무도 이에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런 현상은 퇴폐만화 비디오가게와 함께 추방되어야 한다.
또한 그런 업주,그런 업소가 그 지역에서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하도록 주민들이 방관해서도 안될 것이다. 정부당국과 영업 당사자들,그리고 시민들 모두가 각오를 새롭게 해서 우리 주변의 퇴폐와 타락을 추방하고 우리 청소년의 생활환경을 정화하는 데 힘써야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