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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글씨에서 그림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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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같은 예서체로 쓴‘溪(침계)’지만 풍기는 맛은 전혀 다르다. 추사의 작품(上)이 그림 같은 글씨라면, 옹방강의 수제자이자 추사와 우정을 나눈 중국의 섭지선 작품(下)은 잘생긴 글씨다. 추사에게서는 힘과 자유로움, 순발력이 느껴지는데 섭지선에게선 단정함만이 배어나올 뿐이다.

추사(秋史) 김정희가 요즘 살았다면 수퍼스타가 아니었을까. 간송미술관의 올 가을 전시 '추사 150주기 기념 특별전'에 나온 100여점의 궤적을 하나둘 따라가다 보면 이런 표현이 과장은 아닌 듯 싶다. 이번 전시에는 현재 남아있는 작품 중 가장 큰 글씨인 '명선(茗禪: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이 나온다. 또한 두폭의 한지에 글을 댓귀로 써내려간 '대련'시리즈부터 평상시의 원고 글씨와 담백한 느낌의 문인화 '고사소요(高士逍遙:뜻 높은 선비가 거닐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추사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다 그를 따른 열렬한 팬들의 작품까지 더해진다. 서예는 지루하다고? 도대체 글자에서 뭘 느껴야 하냐고? 어렵게만 여길 것도 아니다. 여기 추사 전시를 재미있게 즐기는 법을 소개한다.

추사 팬들과 비교하면 추사 글씨가 보인다=추사는 젊은 시절 중국 연경에서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인 옹방강을 만난다. 그의 글씨에 경도된 추사는 조선에 돌아온 뒤 옹방강 학풍을 유행시킨다. 그러나 이도 잠시. 추사가 자신만의 서체를 정립해가자 되려 옹방강이 그의 팬이 된다. 옹방강과 그의 제자들은 추사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 글씨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추사의 답장 편지도 가보로 여겼다니 가히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추사의 막역한 친구인 권돈인은 평생을 추사의 글씨를 추구하며 살았다. 그의'행서 대련'과 '허천소초재발(虛川小艸再跋)'은 얼핏 보면 추사의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로 닮아있다. 추사의 글씨에 매료된 중국의 섭지선도 '예서 대련'등을 남겼지만 추사체의 졸박미를 구현하진 못했다.

이건 글씨가 아니다, 그림이다=매끄럽고 단정한 왕희지의 글씨가 '완전한 글씨'라면 추사의 글씨는 '그림같은 글씨'다. 얼핏 보면 어린아이가 쓴 천진난만한 글씨 같지만 그 안에선 회화미가 넘쳐흐른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학예실장은 "추사의 글씨에선 '서툰 맛'이 난다. 쉽게 따라할 것 같지만,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경지다. 한자라는 상형문자의 근원부터 연구해야만 나오는 글씨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추사의 작품들을 보면 글자라기 보다는 아름다운 기호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전시는 15일부터 29일까지.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관람료는 없다. 02-762-0442.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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