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디스플레이어 손현우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늘어놓는 방식에 따라 받는 느낌은 전혀 달라질 수가 있다는 뜻이다.
상점을 새로 차리려는 사람들에게는 한정된 매장공간내에서 어떻게 상품을 효과적으로 진열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손현우씨(31·여)는 바로 이같은 고민을 해결해주는 「디스플레이어」다.
『상품매장은 소비자와 제품이 처음으로 만나는 곳입니다. 길손이 발걸음을 멈추고 진열장을 쳐다본 후 다시 점포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려면 첫인상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쇼윈도에 손님의 시선이 멈추는 시간은 길어야 10초 남짓이지만 이 짧은 순간에 판매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상품진열이 단순한 「늘어놓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손씨의 지론이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취급품목·매장위치등 변수가 많기때문에 상품 진열방법에 왕도는 없지만 진열효과를 높이기위한 기법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예컨대 사람의 시선은 바닥에서 80∼1백20cm높이에 가장 쉽게 와닿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를 「골드 라인」이라고 부르며 이 높이에 가장 역점을 두고있다.
또 시선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상품도 왼쪽에는 작은 물건, 오른쪽엔 큰 물건을 배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손씨가 근무하는 하이센코리아사(대표 박병우)는 전국 21개 매장에 종업원도 1백50여명에 이르지만 디스플레이어는 손씨뿐이다.
이 회사는 의류를 중심으로 구두·핸드백·화장품등 토틀 패션을 취급하고 있는데다 계절마다 상품을 갈아줘야하기 때문에 매장당 연평균 5∼6회씩은 진열대를 새로 꾸며야하며 이는 모두 손씨의 몫이다.
상품배치는 물론 마네킹·야자수·화분·밧줄·금모래·액자·석고상등 각종 소품도 구색을 맞춰 선정, 배치해야하는데 이같은 작업들은 모두 주먹구구 식이 아니라 세밀한 설계·배치도면에 의해 실시해야한다.
특히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명동·강남등지의 타회사 매장을 「견학」하고 외국의 전문잡지를 구독하거나 고객들로부터 의견을 듣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디스플레이 개념이 국내에 본격 도입된 것은 80년대 이후로 불과 10년이 채 못되는데 최근에는 의류뿐 아니라 안경·귀금속·신발등은 물론 은행등 금융기관매장에까지 급속히 확산되고있으며 전문용역업체와 전문가양성학원까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컬러TV의 보급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색과 미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새로워진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손씨의 설명이다. <민병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