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근로장려세제 곧 시행한다는데 현금 지원으로 근로빈곤층 구할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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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그러나 제도 시행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아직까지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분분하다. 자칫 국민 세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점에서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는 일반인에겐 아직 생소한 제도다. 말 그대로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세금공제의 형태로 생계비를 보조하는 것이다. 세금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일명 '마이너스 소득세'로도 불린다.

1975년 미국에서 시작된 EITC는 '퍼주기 식' 복지와 달리 근로와 연계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빈곤층에 금전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복지의 우산 속에 안주하는 것을 막고 빈곤 탈출의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EITC는 복지지출을 통해 근로활동 참가율을 높임으로써 생산유발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정부가 줄곧 강조해온 '동반성장'과 딱 맞아떨어지는 제도인 셈이다.

정부가 빈곤층에 직접 돈을 지원하는 제도가 처음은 아니다. 4인 가구 기준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인 월 117만원을 밑도는 계층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돕고 있다. 그러나 기초생보제 대상자보다 월급이 최대 20% 많은(118만~140만원) 이른바 '차상위 계층'은 형편이 크게 나을 바 없는데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왔다. 이에 따라 138만 명의 극빈층에 대해선 기존의 기초생보제로, 263만 명에 이르는 차상위 계층(기초생보제 비수급자 포함)에겐 EITC를 새로 도입해 이중의 보호망을 갖추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정부는 뜀틀처럼 생긴 미국식 모델을 선택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하고 동시에 일할 동기를 유발한다는 원래 목적에 충실한 모형이다. 이는 ▶소득이 낮은 1단계 구간에선 각 개인의 소득에 따라 지원금을 점차 늘려주고(점증) ▶중간 소득의 2단계 구간에선 지원금을 똑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며(평탄) ▶소득이 높은 구간에선 지원금을 점차 줄인다(점감).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식 모델에 대해 "점감 구간 근로자의 노동참가율이 높아졌고, 400만 명 이상이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미국식을 고려해 설계한 한국형 모델은 근로자 평균임금의 40~60% 수준인 사람이 많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연소득 1단계 구간을 0~800만원으로 정했다. 이에 포함된 근로자는 '소득×10%(점증률)'를 지원금으로 받는다. 2구간인 800만~1200만원은 80만원을 일괄 지급한다. 3구간인 1200만~1700만원은 '(1700만원-연소득)×16%(점감률)'로 지원액을 구한다. 점증률과 점감률은 예산 등을 고려해 정했다. 예컨대 남편이 800만원을 벌고 아내가 600만원을 버는 가구는 '(1700만원-1400만원)×0.16=48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은 걸림돌이 더 많다.

첫째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처음 2년 동안은 31만 가구에 15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150만 가구에 약 1조원을 준다. 이후 전면시행 단계에 이르면 360만 가구에 2조5000억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재경부는 "경제성장으로 근로소득세가 1조원씩 자연 증가하고 있어 ETIC를 위해 국민에게 별도 부담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행 근소세 부담이 높다는 지적에 따라 '세율구간을 늘리고 세율도 낮추자'는 야당 의원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마당인데 재경부의 설명은 윗돌을 빼 아랫돌을 괴려는 식이다. 경제성장이 맘 먹은 대로 이뤄지리란 보장도 없다.

둘째 ETIC는 많은 세금을 동원하는 만큼 대상자를 정확히 선별해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근로자 가구의 소득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정부는 연소득 기준 외에도 집이 없고 부동산.예금.자동차 등의 재산 합계가 1억원 미만인 사람에게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세청이 보유한 근로자의 소득 자료는 전체의 72%에 그친다. 재산 상태를 속인 뒤 부정하게 지원금을 타내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최저생계비 지원에서도 억대의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2013년부터는 자영업자들도 EITC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 파악률은 50% 수준으로 더 열악하다. 재경부 허용석 세제실장은 "처음엔 크게 욕심을 내지 않겠다"며 소득파악 정도와 재정여건을 감안해 초기엔 최소한으로 제도를 시행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대 연 80만원을 받고서 정부의 기대에 부응해 근로의욕을 활활 불태울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시행 초기에 소득 파악률이 높은 근로자부터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역차별을 부를 수도 있다. 보통 소득 파악이 잘되는 근로자들이 더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한국의 근로빈곤층은 낮은 근로의욕 때문이 아니라'괜찮은(decent)' 중간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며 "선진국과 한국의 EITC는 배경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생색내기용 복지지출보다는 과감한 규제완화 등으로 번듯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정책이 더 급하다는 뜻이다.

김준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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