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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화ㆍ국제화하는 폭력조직(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증인 살해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범인들이 소속된 조직의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범인들이 속한 폭력조직은 화교를 자금책으로 해서 자효사까지 거느린 기업형태를 갖추고 유흥업소의 갈취나 이권문제의 해결사 역할뿐 아니라 고서화 밀매와 밀수까지도 해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는 단지 이번 폭력조직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른 많은 폭력조직들이 이미 유흥업소등에 기생하는 사조직의 단계를 지나 겉으로는 완전한 기업형태를 갖춘 기업화된 폭력조직으로 발전해 있음을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
개탄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경찰이나 검찰은 이들 조직이 큰 사회적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전혀 그 동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큰 사건이 나야 비로소 수사가 시작되고,그제서야 폭력조직의 실체를 일부나마 벗겨내는 단발적이고 뒤따라가기 식의 수사에서 여전히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미국내의 마피아나 일본 야쿠자조직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폭력조직이 일단 깊이 뿌리를 내리고 단순한 폭력과 공갈의 사조직에서 발전해 합법적인 기업의 형태를 갖추면 이를 뿌리뽑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져 영원한 사회적 암으로 남게 된다.
법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나름대로 완벽한 보호막을 갖추기 때문이다. 이 단계가 되면 조직의 존재를 알고도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다.
당국은 우리 사회의 폭력조직이 이 단계로 발전하기 전에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
우리나라 폭력조직도 점차 기업화하고 있고 정치적ㆍ국제적 배경도 갖추는등 마피아나 야쿠자의 그것을 닮아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당국이 손 못댈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뿌리를 뽑지 못하면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될는지도 모른다.
폭력조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그 뿌리를 뽑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과 검찰에 항구적인 전담조직을 갖추는 일이다. 사건이 벌어진 뒤가 아니라 평소부터 폭력조직의 계보와 동태를 추적ㆍ관리해 사소한 범법사실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형사소추해서 발목을 잡아야 한다.
폭력조직의 완전한 일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만큼 폭력조직과는 「영원한 싸움」을 각오해야 할는지 모른다. 또 그런 각오와 태세여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폭력조직이 유흥업소나 정치권등을 주무대로 하고 있음은 당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령 대규모 호텔이 서고 거기에 나이트클럽이나 오락장이 설치되면 그 영업권이 폭력조직의 노림이 되고,그곳이 무대가 된다는 것은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에 대한 위법성 여부의 수사나 주변 폭력배들에 대한 동태파악이 있었다는 소리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멀게는 지난 86년의 서울 서진룸살롱 집단살인사건직후와 가까이는 지난해 연말과 올해초에 걸쳐 검경은 폭력조직 전담반의 편성과 그 일소를 거듭 공언해왔으나 이번 사건을 보면 아직 검경은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전문요원을 대량으로 양성해야 한다. 그리고 철저한 장기전에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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