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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대북 정보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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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북한의 9일 핵실험 움직임을 사전에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다양한 분석과 관측이 있었지만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기습을 당한 것이다.

7월 5일 북한이 대포동.스커드 등 7기의 미사일을 쏘아올릴 때도 정부는 대책이 없었다. 핵 실험 장소도 정보 당국이 예측했던 것과 달랐다. 따라서 정부의 대북 정보 파악과 수집 능력에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동향이 처음 포착된 것은 9일 오전 10시40분쯤. 김하중 주중 대사가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에게 긴급 보고를 했다. "중국 정부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각, 대전 대덕 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지질과학연구원도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등에 긴급 연락을 취했다. 오전 10시 35분에 리히터 규모 3.58의 지진파를 감지했다는 것이었다. 진앙지는 함경북도 김책시 북쪽 약 20㎞ 지점으로 추정됐다. 정보 당국이 핵실험 장소로 지목해 왔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과는 수십㎞ 떨어진 곳이었다.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은 오전 10시에 국회 정보위에서 "현재로선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한 특별한 징후는 없다"고 답변했다. 청와대와 관계부처가 지질과학연구원의 보고를 받은 뒤에도 김 원장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바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직후인 오전 10시50분쯤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김 원장은 오전 11시쯤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쪽지를 받아들고 황급히 국회를 떠나 청와대로 향했다.

거의 같은 때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상황 확인을 위한 긴급 통화를 했다.

오전 11시10분쯤 반 장관은 외교부 기자단과의 오찬 취소를 통보했다. 이를 계기로 언론에 '심각한 상황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정부 당국자는 "북한 핵실험으로 추정할 만한 정보가 입수됐다"고 밝혔다.

청와대 안보관계장관회의는 오전 11시30분에 시작됐다. 북한의 핵 실험이 현실화된 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11시38분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사를 통해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2분 뒤인 11시50분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회의장에서 나와 북한에서의 지진파 감지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정부가 북한 핵실험을 공식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반 장관은 회의가 진행 중인 낮 12시47분부터 약 15분 동안 라이스 장관과 아소 다로(生太郞) 일본 외상과 3자 동시통화를 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성격이 격상된 안보관계장관회의는 오후 1시40분쯤 끝났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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