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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뒷받침은 경제력이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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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내 경제계의 대북방 진출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청와대에 대소 경협대책반을 설치 운영키로 했고,기업들은 기업들대로 전담부서를 만들어 대소 진출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방 진출열기가 고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소감은 소련이나 그밖의 동구권 국가들이 과연 우리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잠재력을 갖춘 파트너이냐에 대한 우려도 적지않지만 동시에 과연 우리가 미지의 세계에 전력투구해도 좋을 만한 여력과 내실을 갖추고 있느냐에 대한 불안감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 경제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총체적 난국이라 불릴 정도로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었고,그 기본구조에는 지금까지 아무 변화가 없다.
물론 일부에서는 1ㆍ4분기의 실질성장률이 10.3%에 달했고 설비투자가 다소 늘고 있다는 점등을 들어 우리 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하거나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 자체가 과장이었다고 보려는 시각이 없지않다.
그러나 우리앞에 제시된 성장의 내용은 주택건설이나 부동산투기억제조치로 유발된 빈땅 메우기식의 건축붐,그리고 과소비 풍조에 의해 이룩한 것들이다. 설비투자도 사업영역의 확장보다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기존시설의 자동화 대체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우리 경제의 진정한 실력을 가늠할 지표라할 수 있는 수출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무역수지 적자는 이미 30억달러를 넘어서 흑자기조의 붕괴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기술력의 한계와 생산성의 저하,노동의 질 저하는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계속 떨어뜨려 한때 「한국인이 몰려온다」고 미국인들이 경고를 발했던 미국시장에서 이제 무역흑자가 적자로 바뀌는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최대의 위협으로 생각했던 일본인들도 이제는 경쟁상대가 안된다고 안심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국내경제는 배분문제에 묶여 기술개발ㆍ산업구조 조정 등 시급한 과제를 뒤로 미루어 놓은 상태이며 통화증발ㆍ물가상승ㆍ과소비풍조 등이 계속 경제운영의 발을 묶어 놓고 있어 정부도 무책이 상책이라는 자세로 손발을 놓고 있다.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우리의 발언권을 확대해 나가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대소진출의 지평이 열린 것도 따지고 보면 그동안의 경제력 신장이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한차원 높은 성장궤도를 깔고 북방개척뿐 아니라 서방에서 잠식당하고 있는 시장을 되찾으려면 하루빨리 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도록 온국민이 힘을 합해야 한다.
가닥이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지금의 난맥상을 이룬 국내 경제를 그대로 두고는 북방진출은 한낱 꿈으로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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