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아들에 보내는 「사랑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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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학은 가서 뭐하니.』
임시를 코앞에 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엄마가 있다면 그녀는 아마도 「머리가 좀 어떻게된 모자라는 여자」아니면「인생을 체념하다못해 삶의 전(전)을 송두리째 거둬버린사람」으로 중구에 씹히는 신세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대학이 목숨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지고지선의 인생목표가 되고, 또 거길 거쳐 나오지않으면 사람노릇마저 제대로 할수 없게 돼있는 요즘의 한심한 우리 사회구조 탓이다.
그런데 집안일에 매달려 영일이 없는 한 평범한 주부가 냉소의 수사로나 들릴 똑같은 그 제목으로 책을 써 냈다. 『대학은 가서 뭐하니』(도서출판 청노루 발행).
2백자 원고지 5장 분량의 비교적 짧은 에세이 79편을 모아 엮은 이 책이 한창화제로 떠으르고 있는 것은 지은이 박경신씨(48)가 그저 지지고 볶는 일상에 묻혀사는 범부인데다, 또 글을 쓰는 일과는 사뭇 인연이 먼, 처지임에도 거필 첫마디 제목부터가 이 세상 누구나 공리처럼 「대학」이란 것에 부여하고 있는 절대가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당돌한 (?) 것이어서다.
『대학입시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간지를 준비하던 남편의 지인이 원고를 써달라고해 작년11월과 12월 두달동안 매일 주제를 바꿔가며 한꼭지씩 썼지요. 칼럼제호가 「재수생엄마의일기」였는데 사정이 있어 그 일간지가 끝내 나오질 못하게됐어요. 이 책은 그때 신문에 실릴 양으로 써놓았던 묵은 글들을 모은 겁니다.』
남편 박계점씨(48) 는 『예수쟁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예수쟁이들의 잔치』『거꾸로 본세상』등 교회현실이나 세태에 대한 일련의 비판적 르포물들로 적잖은 문명을 얻고있는 자유기고인. 그는 아내인 자기가 평소 지나가는 투로 끄적여놓은 잡문 한쪼가리라도 꼭 주워들고는『그 글 참좋아』하고 칭찬하는 미덕을 지닌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습관처럼 일기를 써왔기때문에 새삼 글이 멀게 느껴질 것은 없지만 그녀가 그나마 그동안 써놓았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을 용기라도 갖게된건 전적으로 남편의 고무와 바라지가 었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가서 뭐하니』는 물론 잘못되고 비틀린 사회구조를 광정하자는 혁명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핵을 앓으면서 의사로부터 낳아선 안된다는 말을 듣고도 고집으로 낳은 둘째아들 소진이(21). 그래서인지 곧갈 죽상을 하고, 유별나게 병약한 아이. 파리때문에 먹고싶은 떡을 못먹고, 바퀴벌레 한마리에도 수선을 떨고, 가끔가다가는 버릇처럼 『엄마, 나 죽으면 울어줄거야?』 하고 묻는 아이. 그 아이가 어느덧 자라 대학입시라는 왜곡된 통과제의 앞에서 힘겨워 허덕이는 걸 보다 못해 엄마가 편지글 형식으로 토로한 위안의 사연이다.
거기에 분노나 고발은 없다. 논리도 배제된다. 그래서 『카운트다운 40일. 내리 1주일을 졸업시험 치를라 잇따라 배치고사 볼라, 네 노오란 얼굴을 보며 내가슴까지 허옇게 바래간다』 던 엄마가 바로 한줄 건너서는 온몸이 다 아프다는 아들더러 『여기서 쓰러지면 안돼. 이왕 견딘거 40일만 더 견디자』 고 닦음질하는 모순된 대목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건 논리이전에 이 시대를 부대끼며 살아 가는 입시생의 부모라면 어쩌지 못할 지극히 인간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박씨의 글 전체를 엮고있는 기본 얼개는 아무래도 세상의 모성 일반이 자식들에게 갖고있는 안쓰러움과 가이없는 연민과 따뜻한 휴머니즘이다. 한편 한편이 『진아』 라는 정겨운 약호희으로 시작되는 그의 글들에는 자식에게 강요함으로써 짐지우지않고 대신 사람으로 감싸안고 쓰다듬으려는 아름다운 마음이 짙게 배있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달란트를 계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것이지, 네가 남보다등수가 뛰어나고 월등하라는 맴은 아니다. 성적좋은 컴퓨터이기보다는 성적이 좀 나빠도 뜨거운 가슴을 가진 아들이 좋고, 성적좋은 병약한 너보다는 성적 좀 덜좋은 건강한 네가 더좋다』 고 그녀는 섰다.
『한개 못이면 못인대로, 모래알갱이면 모래알갱이인대로, 서까래든 대들보든 제몫을 감당할수 있다면 좋겠다』 던 둘째아들 소진은 원하던 대학은 아니라지만 l년의 재수경력을 거쳐 지금은 총신대의 2년제 관광학과에 입학해 다니고 있다.
『별 어려움없이 대학에 붙었던 첫째아이보다는 떨어질 확률이 더 큰 둘째아이에게, 그리고 대학입시라는 지상의 과제에 눌러 병들어가는 이나라 모든 청소년들에게 한가닥 청량한 웃음을 선사하고싶어 이 책을 썼습니다』 라는 그녀는 『그래서 대학생이 된 맏이 소은이에게 실망했던 이야기로 글머리를 삼았더니 녀석의 불만이 아주 컸어요』 라며 웃는다.
아버지가 목사여서 모태에서부터 이미 신앙을 갖고 나온 크리스천인 그녀는 현재 삼각지에 있는 맹인교회 「애능중앙」에서 전도사로 봉사하고 있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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