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계획」 청와대 표정/소와 「주고받을 것」 밤샘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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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르비 외교스타일 분석… 의정서등 준비/분위기 따라 KAL기 격추 거론할 수도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청와대 외교팀은 출발 하루전인 2일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노재봉비서실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고 태백산계획을 마지막 점검 하는등 눈코뜰새없이 분주.
한소 정상회담의 구체적 장소·시간·방법 등에 대해 소련측과 결정된 것이 없어 여러가지를 대비해 준비하느라 실무자들이 애를 먹고있다는 이야기.
○…청와대외교팀 실무자들은 회담장소가 어디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회담의 내용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만약 소련측의 강력한 요구로 회담장소가 주샌프란시스코 소련영사관으로 낙착될 경우 회담분위기는 매우 경직될 것으로 보고있다.
이경우 우리측은 공식수행원 전원을 배석자로 수행케 하는 동시에 6·25한국전과 KAL007기 격추사건등을 공식거론해 소련측으로부터 분명한 진실해명과 사과를 얻어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원수인 노대통령이 소련의 영토와 다름없는 영사관에 들어가기 때문에 과거문제를 매듭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우리측은 이같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회담의 성공적 결실을 위해 소 영사관이 아닌 「제3의 장소」를 소련측에 제의해 놓고 있다.
만약 소련측이 우리측 요구를 들어주면 회담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양보를 할 것이라는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와대실무자들은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의 외교스타일에 대해 집중 연구했다는 후문이다.
닉슨회고록등 과거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났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과 외국신문들이 보도했던 내용들을 수집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특징과 약점들을 체크하는등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했다는 이야기다.
그결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연설을 할 때는 수식어와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해 설득형 언사를 구사하나 협상이나 회담을 할 때는 장황한 설명이나 추상적 언어구사를 피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가는 실무적 담판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이번 정상회담은 18∼19세기 유럽외교의 특징인 담판형회담이 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실무팀은 우리측 요구사항과 제안내용등 「줄 것과 받을 것」을 요약한 페이퍼를 준비,회담 마지막 부분에 가서 제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회담경과가 좋아 즉각 한소수교를 매듭짓자고 제의해올 것에 대비,수교의정서등도 준비해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철저하게 실무여행이기 때문에 미국 현지에 가서 재미교포들과 만나는등의 불필요한 행사는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한소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에만 전력투구할 예정이다.
청와대실무자들은 국민들의 관심이 한소 정상회담에만 쏠리고 있어 한미 정상회담이 그늘에 가리고 있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면서 한미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중.
한 관계자는 『한소 정상회담은 수교문제등 미래에 관한 것이 주요내용이지만 한미 정상회담은 무역문제·안보문제 등 현재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한미 정상회담도 한소 정상회담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한미 정상회담도 크게 보도를 해달라』고 하소연.
이 관계자는 특히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6일은 부시 미대통령이 당초 그리스수상 콜롬비아대통령 유엔사무총장 등과 만나 3차례 정상회담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며 『그런데도 부시 미대통령이 가장 늦게 뛰어든 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시간을 오전 10시로 잡은 것은 미측이 한미 정상회담을 그만큼 중요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실무팀은 샌프란시스코에 국내기자 1백여명등 내외신기자 5천여명이 몰려들 예정이라는 현지보고를 접하고 겉으로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속으로는 상당히 걱정하는 눈치.
왜냐하면 기자회견을 할 경우 최소한 1천여명이 몰려든다고 보고 그많은 인원을 수용할 기자회견장을 구하기 힘들 뿐 아니라 경호문제도 어렵기 때문.
청와대는 따라서 한소 정상회담 다음날인 5일 오전에 잡아 놓았던 외신기자회견 스케줄을 마지막 단계에서 취소했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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