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되는 새 외교지평의 전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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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소 정상회담길에 오른 노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3일 많은 가능성을 안은 외교의 미답지를 향한 장정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갑작스레 마련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 정상회담은 그런 점에서 온 국민의 결집된 기대와 성원을 보낼만한 우리 외교의 대사임에 틀림없다.
소련과의 수교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번 회담은 무엇보다도 전후 40여년동안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조건지운 외부적 구조를 해체시키는 작업의 시작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번 회담이 기대한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유지시켜온 적대적 배후세력의 존재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 온 민족에게 동족상잔의 전쟁을 강요했고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들었던 대결의 굴레로부터 남북한이 다같이 해방되는 것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같은 변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과업이 남북한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성사시킬 수 있는 새 지평을 열어주게 되는 것이다. 더이상 미국이나 소련때문에 우리는 분단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남을 탓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절호의 기회를 이번 정상회담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상의 성과로 평가하려 한다.
국제정치 구도상 한국의 위치도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공산세계와의 단절때문에 서방세계의 변두리에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서방편향의 불균형속에 성장해온 한국은 이제 동서의 문물이 교차하는 중심부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전방위 진출을 가능케하는 새 지평을 열어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볼때 소련과의 수교가 당장 우리 경제에 새 활로를 열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극동 시베리아의 엄청난 부존자원 개발사업은 우리 경제에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5년째 추진해오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지금 이 정책이 가져다줄 물질적 혜택을 기다리다 지쳐있는 소련 국민들의 불만으로 성패의 기로에 서 있다. 이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도 소련은 한국등 아시아 공업국으로부터 소비상품을 공급받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실현을 위해 지원한 것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측도 극동 시베리아에 무진장하게 묻혀있는 석유·석탄·광물 등을 경제성있는 값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이득을 찾을 수 있다.
안보면에서도 한소관계의 정상화는 질적 변화를 기약해 준다. 83년의 KAL기 피격사건이 보여주었듯이 한반도의 긴장상태는 남북간의 군사대치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해온 미소간의 군사적 대결구도가 위기감을 유지시켜왔다. 한소간에 수교가 이루어지고 미소간에 군비축소를 바탕으로 공존관계가 현재속도로 이루어진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도 완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와함께 범세계적 추세를 이루고 있는 지역단위 경제협력이 동아시아에서도 국가관계의 주된 동기로 등장하게 된다면 안보문제도 차츰 평화공존 분위기로 바뀌어 나가게 될 것이다.
이런 여러 갈래의 새 가능성이 이번 정상회담을 시발점으로 해서 앞으로 계속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역사적인 계기가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우리 외교실무자들이 처음부터 시행착오없이 앞으로 전개될 한소관계의 바탕을 튼튼히 다지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주기를 당부한다.
국가간의 관계란 냉철한 국익우선의 원칙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수교를 앞당기기 위해 지나친 양보나 저자세를 보여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교섭의 핵심은 미래지향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남북 분단의 책임,한국동란때 소련이 한 역할,그리고 KAL기 격추사건등 소련이 한국에 진 부채는 반드시 제기되고 만족스런 결론이 내려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서로 가상 적국으로 간주해온 나라끼리의 관계호전은 결코 간단하지도,쉽지도 않은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교가 가져올 수 있는 현란은 미래상에 지나치게 현혹됨이 없이 엄격한 상호주의를 비롯한 외교원칙을 지킴으로써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북방외교의 마무리 단계가 될 이번 대사를 위해 떠나는 노대통령 일행이 좋은 성과를 내고 귀국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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