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약·된장·장학금 그리고 박태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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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과의 소중한 인연이 홍수를 이루는 수입제품에 대항하는 방패막이 되고 수백억원의 장학금이 되기도 했다. 그 한 사람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전 국무총리)다.

박 회장(사진)과 말표산업, 세중그룹의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말표산업은 말표라는 국산 구두약으로 유명한 회사로 창업자(정두화 수진원 농장 회장)는 농군으로 변신, 전통 된장의 지킴이가 됐다. 여행사와 IT부문의 결합으로 유명한 세중그룹은 과거 포항공대에 수백억원대의 대학 부지를 내놓았다.

이달 들어 회사 설립 51년째를 맞는 말표산업은 말표 구두약과 광택제 생산으로 지난 한해(2005년7월  ̄ 2006년6월) 동안 82억원의 매출에 2억3000만원의 순익을 거뒀다. 말표 구두약은 40여년간 외제를 제치고 구두약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말표산업 창업자 정두화 회장은 국산 구두약의 1등 공신으로 박 전 총리를 꼽고 있다. 외제 구두약만이 있던 60년대 중반 박 회장은 식료품 군납업자였던 정 회장과 일본의 구두약제조협회장을 연결시켜 국산 구두약을 만들 수 있도록 주선해 줬다. 한푼의 외화가 아쉽던 시절로 수입품을 대신할 수 있는 국산이라면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던 때였다.

포항제철 공장을 건설중이던 박 회장은 공사를 맡고 있던 일본 기업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구두약 제조기술 전수를 내락받았고 납품일자를 철저하게 지켜 신망을 얻은 정 회장이 전수자로 지목된 것. 정 회장은 한우물 파기와 국내 경쟁기업과의 기술 공유로 구두약 시장을 국산품 전성시대로 만들었다. 사양산업 대우를 받긴 하지만 지금도 말표구두약은 연간 2000여만개가 팔리는 슈퍼 밀리언셀러다.

말표 구두약으로 일가를 이룬 정 회장은 또다른 길을 찾았다. 경기도 양평에 수진원이라는 농장을 30여년부터 꾸몄고 된장 만드는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는 구두약의 대부에서 전통 된장을 지키는 장류의 장인이 됐다.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은 박 회장과의 인연을 수백억원대의 땅이라는 소중한 열매로 일군 사례다.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인 74년 박태준 회장의 직간접 후원속에 제철화학(동양제철화학 전신)을 설립했다. 당시 그는 제철화학 공장 설계 및 설비를 국산화한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이는 이후 재계에서 그의 입지를 굳히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천 회장은 80년대초까지 여러 회사를 인수 또는 설립한 후 매각했고 이후 여행업에 투신, 국내 최대 규모의 여행사 세중(현 세중나모)을 일궜다. 현재는 여행업과 IT부문을 양대축으로 세중그룹을 이끌고 있다.

회사가 자리를 잡자 그가 먼저 한 일은 이익의 사회 환원이었다. 우수 인재에 목말라있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80년대 중반 설립 중이던 포항공대에 천 회장은 흔쾌히 학교 부지 일부(6만3000여평)를 내놨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규모다. 젊은 시절 자신을 사업가로 발돋움하게 한 박태준 회장과의 인연은 당시 완공되지도 않은 포항공대를 후원대학으로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했다. 세중그룹은 계열사를 통해서도 꾸준히 포항공대에 발전기금을 내놓고 있다.

박태준이 주도한 포스코의 철강은 산업의 쌀이 됐고 그와 인연을 맺은 정두화, 천신일 회장 같은 이들은 또다른 방식으로 알곡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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